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문재인 정부가 산뜻하게 출발했다. 나라가 팡팡 돌아가는 느낌이다. 국민들 몸에 엔돌핀이 솟고 생기가 도는 것 같다. 그가 북악산 기슭에 입성하기 전까지의 청와대는 있어도 없는 것이었고, 거기로 출퇴근하는 전 정권 참모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돼 퇴거한 이후에도 숨죽이고 월급 받고 시간 때우기나 다름없이 지내는 모습은 옆에 있는 춘추관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들이 웅크리고 있던 곳에서 풍겨나는 음습하고 퇴영적인 분위기를 문재인의 건강하고 활기찬 미소가 말끔하게 걷어냈다. '유쾌한 정숙씨'의 천진스러운 행보도 청와대 분위기 쇄신에 크게 한몫했다.

 나라 전체를 하루 아침에 확 바꾼 문재인의 힘은 소통에서 나온다.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 게 무언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는 국민의 마음을 살펴야 답이 나온다. 끊임없이 국민의 마음을 알기 위한 과정이 소통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모식 인사말을 보면 그런 자세가 확연히 드러난다.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개혁도, 저 문재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또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눈을 맞추면서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문 대통령의 말은 개혁을 추진하는 혁명가의 의지와 국민들과 교감하려는 인간적 감성이 잘 조화돼 있다. 검찰 개혁의 칼을 빼들고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감성적인 행보는 모두 이렇게 국민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펴보고자 하는 소통의 의지와 능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습니다"라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지도자의 심성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신선한 인물들의 기용, 적폐청산을 위한 과감한 개혁시도 등 문 대통령의 출발은 참 좋았다. 그래서 취임 보름만에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41.6%)의 두 배가 넘는 87%(리서치뷰 23일 발표)에 달했다. 임기 후반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면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쪽의 말만 듣거나 듣고 싶은 말만 듣는 편향된 소통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에게는 시원하고 당연한 정책이 될지 모르지만 상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간단한 행정명령으로 오바마케어를 하루 아침에 폐지하는 형식으로 처리할 일은 아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이뤄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양쪽을 배려하는 소통이 지속된다면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 "새로운 대한민국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는 역사에 남는 명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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