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올해는 꼭 운동을 열심히 하겠노라고 작심하고 봄을 그냥 보내고 여름도 그냥 보낼 것 같다. 이러다 가을도 보내고 겨울도 흘려보내고 말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방안 가득한 운동 기구들은 오늘도 빨래를 말리고 있다. 허리가 아프고 관절이 삐걱거릴 무렵 큰맘을 먹고 러닝머신을 사들였다. 날이 궂어도 집안에서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면서 열심히 달릴 거라는 거대한 꿈을 안고서 말이다.

 몇 번이나 달려봤을까.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러닝머신이 애물단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싼 돈 주고 샀으니 버리지도 못하고 남을 주기도 아깝고 결국은 구석자리로 밀려나 비오는 날 빨래 건조대 역할을 하고 있다. 지인들이 절대로 러닝머신은 집에 들이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쓸모없는 철제 가구 하나를 들여 논 셈이다.

 사무실 집기를 사들일 심산으로 중고 물품을 파는 곳에 들렀다. 새것과 다를 바 없는 가구와 가전제품이 즐비하다. 이 아까운 것들을 왜 버렸을까, 그냥 버렸을 리는 없을 테고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야 했다. 쉽게 사들이고 쉽게 버리는 요즘의 낭비 풍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싫었다. 알뜰하지 못한 나를 꾸짖는 것 같아 공연히 주눅이 들었다.

 선반이 달린 캐비닛과 책꽂이 두 개를 사고 에어컨과 선풍기, 의자 등은 지인들이 쓰던 것을 주신 덕분에 새것 없이도 새것 같은 사무실을 꾸밀 수 있었다. 여기저기 내가 쓰기 좋도록 손잡이며 잠금쇠를 수리하고 나니 조용하고 깨끗한 사무실 하나가 만들어져 너무 좋다. 혼자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심 흡족하다.

 예쁜 제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래된 스승을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쁘다. 취업을 할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어 내심 근심이 되었던 터인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소식이다. 제자가 잘 되는 일은 자식이 잘 되는 일처럼 기쁜 법이다.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났다. 이제 면접과 신체검사만 남아 있어 체력 단련에 힘쓰고 있단다. 러닝머신이 정말 필요한 사람이 그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뜻 내주기로 했다.

 남이 달라고 했으면 아까워서 주지 못했을 텐데 오히려 신이 난 것처럼 무거운 러닝머신을 끌어냈다. 커다란 에어컨도 피아노도 우리 집에서는 그냥 서있는 가구 역할만 한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꼭 쓸 거라는 생각과 비싼 돈을 지불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들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새우잠을 자고 있어도 쉽게 내놓지도 못하게 된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도 애국이라고 배웠다. 베란다 구석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동양란 화분들도 화훼전문가인 분께 드리고 나니 많은 것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자리를 찾아간 것 같다. 이제 우리 집 방들도 널찍해졌고 내 두 다리는 쭉 펴질 테고 예쁜 제자는 튼튼한 체력으로 경찰이 될 테고 동양란은 은은한 꽃을 피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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