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향 받아 우리 실정에 맞게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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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가야금이라는 이름은 한자화 된 명칭으로 옛 문헌의 한글표기에는 '가얏고'로 되어있는데, 이러한 가야금의 기원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가야국의 가실왕이 6세기에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으며,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12곡을 지었는데, 그 뒤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로 투항하였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4세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토우(土偶)에서 가야금이 발견되고,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삼한시대에 이미 한국 고유의 현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가야금은 삼한시대부터 사용된 민족 고유의 현악기가 가실왕 때에 중국의 쟁(箏)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가야금 종류에는 아악 또는 정악에 사용되는 법금 또는 풍류가야금과 19세기말경 김창조에 의해 창시된 산조음악의 출현과 함께 일반화된 산조가야금이 있는데, 크기는 산조가야금이 법금가야금보다 작다. 그리고 이외에 몸체의 크기·길이를 조절하여 음역을 달리하여 가야금 중주의 연주를 위해 고안된 개량가야금이 있다.
가야금의 기본 구조를 보면, 좁고 긴 오동나무 공명통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굵기가 순차적으로 가늘게 매고, 공명판 위쪽에는 줄을 거는 나지막한 받침목인 현침(絃枕)을 붙인다. 그 옆에 뚫린 12개의 작은 구멍에 줄의 한 끝을 꿰어 공명통 후면에서 돌괘라고 불리는 작은 나무실패에 매어 고정시킨다. 그리고 줄의 다른 끝을 현침에 걸어 공명판 아래쪽으로 보내서 줄마다 12개의 밧줄, 즉 부들 끝에 매게 되고, 부들을 공명판 하단의 꼬리에 뚫려 있는 12개의 구멍에 꿰고 잡아당겨 줄을 팽팽하게 강도를 맞추어 고정시키게 된다. 줄마다 그 중간에는 안족(雁足)을 받쳐놓고 좌우로 움직여 현침에서 안족까지의 줄의 길이로 조율하는데, 줄이 가늘어짐에 따라 받쳐놓는 안족도 낮은 것이 사용된다.
법금과 산조가야금은 크기와 함께 공명통의 구조도 다르게 되어 있는데, 법금은 이어진 곳이 없이 하나의 오동나무판을 끌로 파서 만들고, 부들을 고정시키는 공명통 하단의 꼬리가 t자형의 양이두로 되어 있지만, 산조가야금은 거문고처럼 오동나무 앞판에 밤나무로 된 뒤판을 붙이고, 양이두 대신 봉미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꼬리를 붙여서 만들게 된다.
우리 고유 현악기인 가야금의 제작에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재료의 특징을 파악하고 최대한 그 특징을 살려 사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재료의 적절한 사용은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노력하여 체득한 장인의 숙련된 기술과 함께 악기 제작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도구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과학슬기의 결정체라 할 것이다.
|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