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며칠 전 어머니와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네발 달린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 무얼 사달라고 하시는 적도, 무얼 부러워하는 적도 없는 어머니가 그 지팡이가 갖고 싶으셨나보다. 한번 만져본다고 청을 넣더니 이리저리 둘러보고 들어서 무게를 측량해보고 잘 서는지 여기저기 놓아보고 꼼꼼히 살피신다. 어머니의 외발 지팡이는 가벼워 가져다니기는 좋지만 구석에 기대 놓지 않으면 혼자 서있질 못한다. 자꾸 넘어지는 것이 몸이 불편한 어머니에겐 귀찮을 때가 있었나보다.

 오늘은 어머니가 쓰실 지팡이를 사러왔다. 가게 안에는 장애를 가지고 계신 어르신들을 위한 보호용구들이 즐비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며 이 모든 것이 어머니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식 좌변기도 나무의자처럼 근사하게 만들어 변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에 놓아도 남들은 못 알아볼 것 같다. 목욕의자도 실버카도 워커도 예쁘고 튼튼한 것 같다. 나라에서 장애와 치매를 가진 노인에게 요양시설에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가정에서 지낼 수 있도록 요양사를 파견해 주는 것도 가족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매일 집에 와주는 요양사 덕분에 자식들이 어머니 걱정을 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지팡이 중에서 제일 예쁜 것을 골라 사면서 예쁜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렁주렁한 자식 중 곰살궂게 지팡이 노릇하는 자식이 없는데 예쁜 지팡이 사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지팡이와 워커를 사들고 나오는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거라도 해드리지 않으면 자식도 아니지, 이거라도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가. 이걸 받고 기뻐하실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명아주 지팡이(靑藜杖)를 무척 아끼셨다. 그 보잘 것 없는 지팡이를 왜 그렇게 찾으시는지 몰랐다. 무뚝뚝한 외할아버지가 불쑥 내민 할아버지의 사랑의 표식이었기에 늘 곁에 두고 쓰셨던 것 같다. 청려장은 명아주의 줄기를 말려서 만든 지팡이로 명아주의 잎이 푸른색을 띠어 청려장이라 이름 붙여졌단다. 명아주는 심장에 좋은 식물로 몸에 지니고 있어도 효력이 있다고 전해져 명아주로 만든 청려장은 효자들이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역시 나는 효자 되기는 글렀다. 명아주 지팡이를 미리 사드렸더라면 이렇게 쉬이 주저앉지 않으셨을 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청려장을 짚을 시기도 지나 지팡이의 지팡이가 달린 네발 달린 지팡이를 짚으셔야 하다니. 외발 지팡이보다 조금 무겁기는 해도 어머니가 애용하시는 것을 보니 흐뭇하다. 부모의 속을 다 파먹어가며 자라서는 이제 빈 껍질만 남은 부모의 속을 채워드리지 못하고 있다. 든든한 지팡이라도 되어드리면 좋으련만 제 먹고 살 것만 찾아 뺀질거리고 있으니 지팡이로 먼지 나게 맞아도 싼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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