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어제는 참으로 많은 말을 했다. 사무적인 이야기도 했고 칭찬도 했고 말싸움도 했다. 이런 말들의 순서가 어떻게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한동안의 날들이 달라진다. 말싸움을 먼저하고 칭찬을 하는 날이었다면 그 다음날이 무겁지 않을 테지만 순서가 바뀌어 칭찬 먼저 말싸움 나중이면 영락없이 그 다음날을 망친다. 어제가 그런 날이다. 소나기 오락가락하는 매지구름 가득한 날처럼 맘이 어둡고 두껍다.

 누구나 평생을 따끔하게 듣는 가르침이 어디서나 말조심하라는 말 아닐까. 나도 지금까지 들어온 가르침이고 아이들에게도 무수히 하는 말이지만 실천은 참 어렵다.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게 화가 나지만 화풀이 할 데가 없으니 실컷 먹기나 해야겠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 사람 원래 그렇잖아, 마음 비워"라고 위로를 한다. 마음을 비우라는 미션도 말조심하라는 미션처럼 어려운 것 아닐까? 위로를 받으려다 한 가지 과제를 더 얻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사는 방법 중에 내가 터득한 참 치졸한 방법 하나가 있다. 나는 수녀님이 되지 않을 것이고 스님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인간을 가슴에 품어주고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오래도록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야 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내 것을 빼앗아 간 사람도 나를 때린 사람도 침을 뱉은 사람도 다 용서하고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는 분명 그렇게 해야 한다고 쓰여 있으니까.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게 해달라고 수많은 밤을 무릎 꿇고 빌고 또 빈다. 아이러니는 정작 잘못한 사람은 회개하기 위해 무릎을 꿇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터득한 방법은 그 누구를 용서하게 해달라고 빌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운 사람은 그냥 미워할 것이고 나를 때린 사람에게는 지나가다 발등이라도 한번 밟아줄 것이다.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가 되지 않아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얼마나 오랜 동안 숨이 쉬어지지 않아 가슴을 쥐어뜯었던가. 이제 고단한 나를 위해 용서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속이 좁쌀톨만 해서 내게 용서란 가당치 않았나보다.

 요즘은 마음이 참으로 편해졌다. 미운 사람을 미워할 수 있어서 말이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서 알다니, 나도 참 미련하고 머리 나쁜 인간임에는 틀림이 없나보다. 한동안 나는 미운 사람을 양껏 미워할 것이다. 사람을 사랑할 의무와 함께 미워할 역사적 권리도 타고 났다는 것을 헌법처럼 믿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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