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세금 올리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보면 자칫 정권의 명운을 재촉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부는 재정 확충을 명분으로 증세 공론화에 불을 붙였다. 증세 논의의 발단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국정자문위는 100대 국정운영 과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재정을 5년간 178조원으로 추정했는데, 향후 세입 확충으로 82조 6000억원, 지출 절감으로 95조 4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매년 세금이 12조 1000억원이 더 걷혀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을 60조 5000억원으로 잡았고, 재정지출을 절감해 5년간 약 60조 2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증세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이 재정 계획이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여당에서부터 증세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도 증세없는 복지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우리 이제 좀 솔직해지자”고 일갈해 증세론에 불을 지폈다. 이어 추미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이른바 ‘쪽집게 부자증세론’을 내놨다. 청와대를 대신해 야당이 궂은 일에 총대를 멘 셈이다.
여당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를 불과 10월여 남겨둔 시점에 과감하게 증세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배경엔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존재한다. 또 증세 대상을 극소수 일부 고소득층으로 한정해 연소득 5억 원 이상 고소득자의 세율을 40%에서 42%로, 연간 수익이 2000억 원 이상 되는 초우량 기업들로부터는 법인세를 최고 22%에서 25%를 걷기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추 대표는 이렇게 일부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올린다는 것을 내세워 ‘명예과세’, ‘사랑과세’, ‘슈퍼리치 과제’, ‘핀셋과세’ 등 증세를 미화하는 갖가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세금을 올리면서 마치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줬다는 홍길동이 된 걸로 착각하거나 과대망상을 품은 건 아닌지 의심을 살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길고 양극화가 극심한 나라에서 세금을 올려서재정을 확충하고, 정부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논리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정당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증세에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느냐가 중요하다. 소수의 부자를 쥐어짜서 다수의 경제적 약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이 일견 정의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다수의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일 가능성도 높다.
이런 식의 편가르기가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부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즉각 대응할 것이 분명하다. 조세의 정의는 국민개세(皆稅)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는 세금이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너무 무시해왔다. 갖가지 공제 혜택으로 근로소득자의 46% 이상이 세금을 한푼도 안 낸다는 것은 문제다. 단돈 만원이라도 낸 후에 복지혜택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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