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내가 사는 곳은 청주시 모충동이다. 모충동이라면 아는 사람이 많지만 고당이라고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우리 집이 고당 날망에 있다고 하셨다. 잘은 모르지만 고당은 무심천 변의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일 것이다. 높은 곳이라면 바람이 잘 통하고 시야가 탁 트인 비싸고 좀 사는 사람들의 집을 상상하겠지만 여기는 아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초가집만 있었던 초라한 동네이다.

 조선시대에 양민들과 어울려 살 수 없는 아주 신분이 낮은 갖바치들이 모여 사는 곳이 고당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가난한 동네라는 수동보다도 더 초라하고 허름한 동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부터 포클레인이 들어와 청주의 마지막 쪽방촌을 허물고 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교시절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어지며 이 동네로 이사 와서 결혼을 할 때까지 살았고 직장을 그만 두고 다시 청주로 돌아오고서도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고 있으니 참 인연이 깊은 동네이다.

 가끔 햇살이 좋은날 산책을 나간다. 예전 같으면 차를 타고 산성을 한 바퀴씩 돌고 왔지만 무릎이 아파지고는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아본다. 구석구석 돌다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행복한 마음으로 고당의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녔다. 쌍샘이 있던 자리, 쪽방촌 같은 집들이 나란히 있던 곳, 비누공장이 있던 곳, 얼음공장이 있던 곳을 돌아다니며 내가 사는 마을을 이렇게도 모르고 있었던가 하는 무관심함을 반성해보기도 했다.

 비가 마구 쏟아져 무심천이 넘치려 한다는 날 걱정이 가득하여 무심천변으로 달려간다. 벌건 물이 넘실거린다. 시대가 변하면서 홍수에 떠내려 오는 것들도 종류를 달리 한다. 어린 날 보았던 무심천에는 홍수가 지면 초가집이 통째로 떠내려 오고, 소 돼지가 안타깝게 떠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자라서는 냉장고, TV 같은 가전제품이 떠내려 왔는데 지금은 자동차가 떠내려 온다. 30여 년 전 무심천 밑에 있었던 우리 집에 물이 역류하여 침수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던 때니까 오물이 안방까지 밀려들고, 광속에 살던 쥐떼가 놀라서 헤엄쳐 방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지금은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그때 놀란 가슴이 지금도 비가 오면 쿵쾅거린다.

 내 추억과 함께 가난이 모여 사는 고당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폭우에도 살만한 동네다. 지대가 높으니까 말이다. 앞으로는 높은 사람이 많이 살아서 고당이 되었다는 전설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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