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한여름 흘러내리는 땀만큼 성가신 것이 모기다. 가려운대로 벅벅 긁다보니 모기에 뜯긴 곳은 겨우 바늘 자국 만큼인데 발등에 피나고 부은 자국이 강낭콩만하다. 긁을수록 더 가렵다. 모기가 나를 물고 간 것이 아니라 나를 중독 시키고 간 것 같다. 미친 듯이 긁어도 가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며칠 지나고 보니 상처위에 가슬가슬 딱지가 앉기 시작한다. 긁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잊고 마구 긁어댔다. 막 앉으려던 딱지가 떨어져나가고 진물이 흐른다. 그 작은 모기 한 마리가 참으로 성가시게 한다.

 상처 위에 앉은 딱지는 균이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딱지가 앉으면 꾸들꾸들 진물이 흐르던 상처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함부로 잡아떼어서는 안 된다.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다독다독 잘 붙여두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도 그렇다. 예전에 잘 만나던 사람과 이별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내가 성에 안 찾던 모양이라고 금세 마음 접는 법을 알았을 텐데 그때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태양은 다시 뜨지 않을 것이고 꽃도 피지 않을 것이며 새들의 노래를 영원히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다친 마음을 긁고 또 긁으며 상처를 키우고 있었다. 상처는 가만히 두어야 빨리 낫는 법이다. 자꾸 건드려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약을 들이부어도 안 된다. 그걸 몰랐던 나는 온갖 좋다는 처방을 다 쓰기로 했다. 주변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주워들은 대로 빨리 그를 잊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시간은 언제나 제일 좋은 약이 된다. 하루하루 가슴에 얹혀있는 바위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진물처럼 흐르던 눈물도 잦아들자 마음의 상처에도 딱지가 앉았다. 사는 일이 이렇게 폭풍처럼 밀려왔다가 또 그렇게 쓸고 나가는 거라는 걸 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이 빌어먹을 인간이'라는 어두를 붙이고 이야기를 시작했겠지만) 그 사람이 내가 절망에 빠져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숨이 멎을 만큼 반가웠고 절망도 미움도 순간에 사라졌다. 발밑에 턱을 괴고 이야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올 향기로운 언어를 기다렸다.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기운을 차리고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 빌어먹을 인간이 말이다.

 잘 아물어 가던 딱지를 긁어 진물이 다시 흐르게 했다. 처음 입은 상처보다 딱지를 함부로 떼어낸 상처는 더 아물기 어려운 법이다. 상흔도 더 크게 남는다. 지금이라면 그도 이별하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다시 찾아가 상처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폭염이 지나고 나면 여름이 다 간 것 같고 여름이 가고 나면 한해가 다 간 것 같다. 꾸둑꾸둑 아물어 가는 발등을 보며 삶도 자꾸 앉았다 떨어지는 딱지가 생길수록 더 단단히 여물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올 여름에도 딱지 하나를 덧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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