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귀에 덕지가 붙을 정도로 들어온 말 중,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이며 그 교육을 완성하는 것은 독서'이다. 독서는 원래 계절이나 연령, 성별, 직업까지 건너뛴 평생 양식인데 우리나라 성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은 10권 수준으로 한 달에 한권이 채 안 된다는 통계다. 씁쓸하지만 책읽기 A+ 수준으로 일본인을 꼽는다. 그들의 독서습관은 버스나 기차 안에서 쉽게 눈에 들어온다.
청일전쟁 후, 민(民)과 관(官)의 호흡으로 공공도서관이 설립돼 이용자가 놀랄 정도로 부쩍 늘어 결국 의식 형성까지 중요 역할을 하게 됐다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다행스러운 건, '책 읽는 청주 선포식'과 함께 우리고장 청주의 입학 전 아이들 도서관 이용 숫자 역시 꾸준한 증가추세다. 학교와 지역사회 도서관(실)이 첨단화되고 비치된 장서 역시 일본과 대등하다. 필자의 교직 40여년 경험에 비추어볼 때, 다독을 통해 독해력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경우, 고학년에 오를수록 학습 정도가 대부분 상위였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학교마다 건물 중앙에 도서관(실)을 배치하고 공간마다 이동도서실을 꾸며 5~10분 책읽기와 필독 및 권장도서를 정해 토론까지 이어가는 과정은 참으로 알짜배기 독서교육사례였다.
그런 독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나 사교육도 필요 없다. 처음으로 글자를 알 때 내용에 끊임없이 궁금증을 갖는 게 중요하다. 관련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제공하고 맞장구치며 들어 준다. 인내심이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끝까지 읽으려면 오히려 지루할 수 있다. 몇 쪽 짜리 얇은 책부터 단계를 높여가야 멀미를 잊는다. 스스로 이해·생각·터득 과정의 자연스런 독서 하나면 충분하다.
필자에겐 유별난 손주가 있다. 4살 때부터 토·일요일은 애미 애비를 졸라 마을 도서실이나 시립도서관에 묻혀 살다시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동안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는 책과 함께 놀기였다. 지난 주말 하루 동안 독서량은 무려 60권 이었다. 오전 10시 도서관에 들어 꼬박 오후 10시까지 읽었다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 아닌가. 책 속의 세상맛을 느낀 게 분명하다. 무엇을 조기 교육해야 할지 윤곽이 잡힌다.
가볍다 싶은 내용의 책도 때로는 삶의 보탬이 되지만 거듭해서 읽을수록 거울 같은 활력을 느낀다. 책속 저자와 대화를 나누면 보이지 않던 것들에 대한 배려, 다시 들춰야 할 세상 등, 팽개쳐진 삶의 소중함을 일으켜 가치 재발견까지 가능하다. 독서를 즐긴 사람일수록 사용하는 언어와 생활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여유롭다. 어휘 역시 늘어나니 자신감이 생겨 대화 창출을 선도하여 소통의 근육이 단단해진다. 독서 패싱(passing)으로 마음까지 메말라 고립된 채 입으로만 교양을 드러내려는 빈독(貧讀)의 시대, 조화로운 인생의 디자인에 독서를 추월할 성장판이 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