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복대초 교장·시인

[박종순 복대초 교장·시인] 새벽에 일어나 옥상으로 올라가보았다. 밭에서 캐온 땅콩알이 궁금하여 살펴보고 겉에 묻은 흙을 털고 씻어 소쿠리에 담아 놓았다. 해님을 기다리다 위를 올려다 보았다. 새벽하늘은 전반적으로 옅은 옥색이었고 구름이 곱게 펼쳐져 신비로웠다. 새벽에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모습은 처음이라 눈을 뗄 수 없었다. 막 동터오는 햇살이 연하게 겹쳐서인지 파란하늘에 하얀 구름이 걸쳐 깊은 호수가 하늘에 담겨있는 형세이다. 아니 저 깊고 넓은 호수가 하늘에도 있다니 늘 노을 진 붉은 하늘만 보다 진정 새로운 발견이었다. 하얀 달님도 호수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숨을 죽인다. 마침 개미 만하게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도 보였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40년 전 대학시절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거닐던 미호천에서 한 번 보았던 그 하늘 모습이다. 청주에서 교원대를 지나 긴 다리를 건너며 미호천을 생각한다. 넓은 강가 모래밭에 미루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와 맞닿으려는 먼 하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동기들도 어느 새 회갑을 맞아 어렴풋 미호천 강가를 잊어가고 있으련만 나는 그 미호천을 스쳐지나 오송역 화려한 불빛을 쏘아보며 조치원으로 향해 가고 있다. 교사시절 마지막으로 담임한 제자가 11년 만에 연락을 해와 바로 만나자고 내가 약속을 잡은 것이다.
"선생님! 저 ○○인데 혹시 기억나셔요?" 장난기 많고 눈이 큰 귀여운 꼬마소년.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난 그 소년을 바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불장난으로 어린 엄마가 낳고 가버려 조부모 밑에서 자라다 학교에 입학하여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전화로 대강 알아보니 중학교를 졸업하고 작년에 검정고시를 보아 고교 학력을 인정받고 지금 큰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소년이 1학년 때 담임인 나를 기억하고 연락을 주니 그저 고맙고 반갑고 보고 싶어서 조치원 역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늘 그리던 미호천을 다시 건너는 것이다.
미호천(美湖川)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면서 흐르는 내'이기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 곳이다. 역 앞에서 만난 제자는 장난기가 사라진 의젓한 얼굴로 잘 자라 있었다. 그가 일하는 대형마트까지 다시 가서 사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건강 등 여러 것을 살펴보았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외로움을 멀리하고 사랑을 품어낸 앞에 서 있는 마지막 제자가 대견할 뿐이다.
아침 새벽하늘에 펼쳐진 호수, 늘 그리운 미호천 그리고 나의 마지막 제자는 시월이 건네 온 뜨거운 선물이다. 한국사 등 총 7개 과목을 공부하여 모두 60점 이상을 맞아 고교를 졸업한 나의 마지막 제자를 응원한다.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없었던 한 사람 그 제자가 찾아와 나의 삶은 다시 시작이다. 제자여 군대 잘 다녀오고 씩씩하게 살아가자. 우리 다시 만났다. 어린 소년은 내가 그를 사랑했다고 믿고 있다. 조심스레 떠올린다.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제자들에게 나는 어떤 사랑을 베풀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