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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 수 없는 것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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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5  1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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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생일은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미리 받은 장미와 리시안셔스가 마음까지 핑크핑크하게 한다. 늘 사는 일에 바쁘다보니 내 생일을 챙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연초에 달력에는 생일을 커다랗게 표시해 두지만 나도 가족들도 잊고 지나가버린다. 내 생일을 잊고 지내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가족들의 생일이나 친구들의 생일도 잊고 살았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꼭 내 생일을 챙겨주는 친구들이 늘었다. 나도 신경 써서 그들의 기념일을 챙기고 작은 선물과 꽃을 주고받는다.

 사람과의 관계가 이런 것인가 보다. 정신적으로 이어진 관계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표가 나도록 챙기는 것. 그것이 관계의 유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병문안을 가는 것도 조문을 가는 것도 정신적 교류뿐 아니라 관계의 유지라는 표현이다. 지난달에는 넘어져서 무릎을 수술하기위해 며칠 입원을 했다. 푹 쉬다 나올 요량으로 조용한 병실을 잡았는데 문병을 온 사람들로 손님 접대만 하고 나온 것 같다. 쉬지는 못 했지만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며 지낸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다.

 퇴원을 하고 붕대를 풀기도 전에 상가에 가야했다. 내가 문병을 가기로 한 이틀 전에 사촌 언니가 세상을 뜨셨다. 아직은 더 사셔도 되는 나이인데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는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가셨다. 먼 길 기차를 타고 가면서 살아계실 때 한 번 더 찾아가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사실 왕래가 잦던 언니가 아니라서 조카들 얼굴도 낯이 설었다. 내 기억으론 참 무서운 언니였다. 똑똑하고 논리적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도움을 주지도 않는 차가운 분이었다. 상가가 썰렁한 것을 보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관계에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이기에 더럭 겁이 났다. 나도 결코 관계를 잘 유지해 가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 난 다음 썰렁한 상가를 지키고 있을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서야 누가 왔다갔는지 누가 슬퍼했는지 알 수는 없으리라. 내가 나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서 소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잘 유지 하지 못한 관계로 인하여 내 아이들, 후손들이 적막과 쓸쓸함을 견뎌야 하리라. 내 삶은 내 선택만이 정답이라고 하지만 나는 줄곧 오답만을 쓰고 있었던 느낌이다. 내가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번 선택을 스스로 하지 않고 뺑뺑이를 돌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연분홍빛으로 화사하고 얌전히 책상 위를 지키는 생일 축하 꽃이 불안한 내게 커다란 위안을 준다. 꽃을 준 친구가 아직은 핑크핑크하다고 했다. 과장이 고봉인 말이라 해도 기쁘다. 친구의 선물을 사기위해 다리품을 팔고 다니는 성가신 일이 관계유지를 시켜주는 인생의 정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과정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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