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추석 연휴 즈음이다. 다른 내용을 검색하다 우연히 최동원 선수 어머니 시구 기사에 눈길이 닿게 되면서 그에 대한 기사들을 검색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그는 1984년 한국시리즈 7경기 중 5경기 출전, 40이닝 투구, 4승 1패의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며 그해 자기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투수로서의 최동원은 롱런하지 못하고 32살 선수로 한참 활동해야 할 나이에 유니폼을 벗게 된다.

 그것은 1984년 한국시리즈의 불가사의한 기록이 말해주듯, 당시 수년간 팀 운명이 한 선수 개인의 지속된 혹사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과 회복 기간 없는 가혹한 무리가 선수 개인에게는 선수생활의 단명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열악한 여건과 부당한 처우를 받던 선수 권익을 위해 결성한 선수협의회 선두에서 최동원이 총대를 메었다가 구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트레이드를 당하게 되는데, 초창기 프로야구에 흠집을 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에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트레이드에 응하지만 이듬해 스스로 그라운드에서 내려오게 된다. 훗날 그는 "만약에 인생 전부를 바친 그라운드에서 물러나 문을 잠그고 벽에 기댔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 선수는 야구를 사랑한 것"이라는 말로 야구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그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온 구장의 시선을 한 손아귀에 휘어잡으며 하나하나의 투구에 혼신을 쏟아 강속구로 내리꽂던 자이언트의 어깨, 투수 최동원이 그라운드에서 내려온 이후의 모습은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지상에 내려온 바다의 거대한 새 알바트로스를 떠올리게 한다. 보들레르는 시 <알바트로스>에서 '폭풍우 속을 노닐며, 활 쏘는 자를 비웃던' 창공의 왕 알바트로스가 뱃사람들에 의해 땅에 내려져 끌릴 정도로 거대한 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서툴게 걷고 있는 운명을 더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애틋한 연민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보들레르는 땅에서 날개를 펴지 못해 무기력하게 걸어야 하는 창공의 왕 알바트로스의 모습에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당하며 저 높고 먼 곳을 응시하는 보들레르 자신에 다름 아닌 시인의 이미지를 투영한다.

 자신을 전부 쏟고 또다시 쓸쓸히 물러나게 될지라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하겠다던 최동원의 담담한 고백에서 거추장스럽게 땅에 끌리는 거대한 날개를 묵묵히 감내하는 창공의 왕 알바트로스의 존귀와 위엄이 느껴진다. 저 높고 찬란한 별자리에서 내려와 '별을 쫓는 이들의 길을 밝혀주었던' 최동원의 지고지순한 빛은 낮은 세상 속에서 서툴면서도 더없이 고독하고 아름답고 높은 시를 노래하는 시인의 영혼, 묵중히 땅에 내려져 있으나 저 먼 구름 위의 유유한 비상을 일깨워주는 알바트로스의 날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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