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좋아하는 대상은 장점만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가이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나라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행을 갔다가 가이드의 설명에 빠져 이민을 간 사람도 있다 하니 말이다. 나도 제법 여러 곳을 여행한 경험이 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가이드 덕분에 언젠가는 그곳에서 장기간 살아보고 싶다는 꿈 목록을 하나 더 추가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 외에 그곳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가이드를 만난다는 것은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는 행운이다.

 일본 문학기행에서 만난 조 가이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 길지 않은 이동 시간 내내 일본의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쏟아 내었다. 특히 연대기 별로 날짜와 시간 등을 정확하게 얘기할 때는 그것이 진실이고 거짓이고를 떠나 무엇이든 잊고 헤매는 나로서는 감동이었다. 물론 날마다 하는 직무이다 보니 머릿속에 일본 역사가 도식화되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야무진 목소리로 좀 더 높은 시민 의식을 강조하는 모습이 전문가다웠다. "나는 언니가 아녜요"라는 말로 가이드가 인사를 시작했을 때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던 선입관이 직업관이 투철한 사람으로 보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40대 중반인 가이드에게 여기저기서 언니라고 부르는 소리가 못마땅했다고 한다.

 그러니 '조 가이드님'이라고 불러주면 본인도 우리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러 드린다는 말로 호칭에 대한 흥정이 끝났다. 여행 내내 누구도 '조 가이드님'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에 대해서도 단단히 주의를 들은 터라 일행을 놓칠까 봐 깃발을 찾고 찾으며 서둘러 따라다녔다. 동대사, 오사카성, 청수사 등을 관람하며 특별히 눈에 띄는 광경이 있었다. 노인들 일자리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관광지 곳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가까이서 보니 대부분 노인이었다. 식당에서 서빙 하는 분들도, 관광지에서 안내 하는 사람들도, 길가 상점에서 안내 하는 사람들도, 톨게이트에서 표를 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골프장 캐디도 노인이 대부분이라는 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많은 노인이 현직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몇 가지 특이점이 발견되었다. 일하는 노인들 대부분은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거나 허리가 반듯했다. 오랫동안 식습관과 체력관리를 통해 늦은 나이에도 일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온 게 분명하다. 평생 현역을 꿈꾸며 일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않은 세월 덕분이리라.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대성하이텍이라는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만난 일본인 기술자도 일본에서 은퇴하고 한국에 와서 기술고문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부품에 손으로 작은 흠을 내는 스크래핑 기술인데 곁에서 보니 섬세한 작업에 육체적인 힘도 많이 드는 것 같았다. 젊은이들도 숙지하기 어려운 정교한 기술을 가르치는 팔순의 일본 기술자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었다.

 초고령화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에 대한 인식이다. 젊은이는 젊은이다운 일로 열정을 불태우고, 노인은 일의 경험과 숙련도로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되고자 하는 직업의식이 필요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옛말이 무색한 우리 현실에서 일본 노인들의 활약은 부러움 그 자체이다. 그러니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26명이나 나오지 않았냐는 생각이 든다. 원폭 투하한 지 4년 남짓 되어 원폭과 가까운 소립자 이론인 중간자 이론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일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노벨 의학상 생리학상이 생체실험한 한국과 중국의 마루타 덕분이라며 폄하하려고 하지 말고 배울 것은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 개인이 직업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자세로부터 국가의 영광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언니가 아니라는 다부진 말로 자신의 직업의식에 대해 기준을 정하고 대한민국의 애국자다운 역사의식으로, 일본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설명해준 조 가이드님이 이번 여행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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