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광섭칼럼
다시 한겨울이 온 것 같다. 한국 땅은 얼었던 대지를 박차고 솟아오르는 새싹들마다 그윽한 꽃향기 품어낼 준비가 한창이겠지만 이곳 캐나다는 3월의 한 복판에 서 있는데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삭풍이 매서울 뿐이다. 사람마다 마음의 온도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그 어느 계절보다도 겨울에 생각이 깊어졌던 것 같다. 오랜 시간 흑백으로 칠해지는 계절, 영하의 날씨는 누더기 같은 삶에 긴장감을 더해 주고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은 때로 마음의 바닥까지 보게 한다. 눈에 보이는 변화와 아름다움보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내밀함에 가슴 설렘도 느낄 수 있어 좋다.

캐나다 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에는 밴쿠버에서부터 캘거리·서스캐처원·퀘벡·토론토를 연결하는 공예스튜디오 실크로드를 탐사했고 이번에는 토론토·캘거리·밴쿠버 3개 도시에서 작가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예비엔날레 관광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50개가 넘는 스튜디오와 지역별 공예협회를 방문하면서 그들의 순수함과 창의적인 열정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발 닿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각기 특성과 기량을 펼치느라 여념이 없었고 교육기관과 작가간의 끊임없는 네트워크는 서로에게 깊은 영감을 만들어 주었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분발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됐다.

게다가 작가들의 창작 전시 유통 마케팅 교육을 지원하고 있는 공예협회의 헌신적인 노력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사실 내가 캐나다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캐나다공예협회의 적극적인 구애작전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난 2007년 가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캐나다 공예협회 관계자 몇 명이 방문했다. 전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본 뒤 조직위 사무국으로 불쑥 들어와서는 "다음 비엔날레에는 캐나다가 초대국가로 참여하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느닷없는 제안에 나는 "몇백년 되지도 않는 나라에 무슨 공예가 있겠느냐"고 말하자 그들은 "캐나다 공예인들의 다양성과 열정을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해 달라"고 되받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대성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나 기업체로부터 매년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작가들의 창작환경을 개선하며 외연을 넓히는데 힘써오고 있다.

이번에 열린 관광설명회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올 가을에 열리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초대국가로 선정되자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큐레이터와 디자이너를 선정했으며 전국에 걸쳐 참여작가 공모에 들어갔다. 캐나다 최고의 작가만을 엄선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아트마켓, 이벤트, 교육, 작가교류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청주를 방문할 대규모 관광단 모집에 나선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토론토지사와 캐나다공예협회, 그리고 공예비엔날레조직위원회 3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는 300여명의 작가와 시민들이 참여했다. 대한민국의 작은 도시 청주에서 세계 공예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글로벌 이벤트를 전개한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자신들이 초대국가로 선정되었다는 자긍심이 교차되는 모습들이었다.

게다가 공예협회의 적극적인 섭외 덕분에 캐나다 국영방송에서 공예비엔날레와 관광설명회를 전국보도 하면서 크게 고무됐다. 무엇보다도 경기불황으로 기업체의 협찬을 이끌어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는데 몇몇 기업체에서 후원과 협찬을 약속하는 결실을 이끌어 냈다. 정부에서도 캐나다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라며 흔쾌히 지원에 나섰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그들의 삶의 향기를 느끼는 순간 내 몸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준비하시라. 올 가을 캐나다 공예의 다양성과 그들의 열정에 당신의 마음을 빼앗길지 모른다. 차라리 허무의 곳간에 그들의 사랑과 포용과 환희로 모자이크를 하고 삶의 지혜를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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