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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와 문자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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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2  1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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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습관처럼 집에 들어서면 TV를 켠다. 정적만이 감도는 집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내가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소리는 강아지가 나를 반기는 소리, 용변을 보고 싶으니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는 끙끙대는 소리뿐이다. 노인들은 늘 누군가가 그립다. 사람의 온기를 바라는 것도 사치가 되어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잠이 들 때까지 TV를 끄지 못한다. 나도 TV를 켜놓고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전화를 해주는 날은 소리의 톤이 천장에 닿아있다. 자식의 안부를 알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집에서 말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더 신나는 일인 것이다.

 아들에게 투덜거리는 대부분은 '오늘 한 마디도 못해봤어'라는 것이다. 아들은 글 쓰시면 되지 뭔 말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고얀 녀석들, 전화 한통 해주면 되지 필요한 말도 꼭 문자로 보낸다. 아침이 되면 문자가 쏟아져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자판을 누르느라고 아침의 바쁜 시간을 한참 허비한다. 일일이 다 답하지 못하고 외출을 하고 아침에 들어온 문자는 까맣게 잊고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답장 안한다는 책망의 문자가 또 날아든다. 글자와 긴밀히 살고 있는 나지만 글자보다는 생생한 목소리가 좋다.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날은 오늘은 설문조사도 안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별의별 질문에 상세히 대답해 줄 텐데 말이다.

 어르신들이 외롭다고 말하면 나는 TV와 친해지길 권한다.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고 전화조차 없는데 어쩌겠는가. TV를 틀고 예쁘고 멋진 사람들을 얼굴반찬 삼아 밥을 먹고 불러주는 노래도 듣고 까불고 재롱떠는 것도 손자라 생각하고 귀엽게 봐주고 드라마 속에 빠져 울어도 보고 깔깔 숨넘어가게 웃어도 보고 자장가 불러주는 엄마라 생각하고 가물가물 소리를 들으며 잠들면 된다.

 세상이 좋아져서 별별 서비스가 넘쳐 나는데 말해주는 서비스도 있는지 모르겠다. 눈은 점점 어두워져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는 일이 힘들어지는 노인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말을 걸어 대답할 기회를 주는 서비스 말이다. 물론 이미 귀도 어두워져 알아듣지 못하는 분도 많겠지만 그래도 대답할 때까지 소리 질러 말 걸어주는 친절한 서비스는 없을까.

 가을도 저물어가고 밤은 길어지는데 이 어둠을 어찌하나. 경로당에서 낮에 놀던 친구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고, 주민센터 프로그램에서 함께 노래하던 이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면 정적이 가득할 텐데 누가 말 걸어줄까. 윗집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퇴근을 하시는 모양이다. 잔뜩 웅크린 등이 작은 바가지 같다. 혼자 저녁을 드시고 일찌감치 자리에 드시리라. 오늘 저녁에는 멀리 사는 자식들이 하루 잘 지내셨냐고 전화 한 통은 해줄라나 모르겠다. 우리 집 TV에 오늘은 어떤 고운 사람들이 나와서 나를 울리고 웃겨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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