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올 봄인가, 다시듣기로 즐겨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곡이 끝나자 진행자는 그 음악이 찰리 채플린의 자전적 영화 <라임라이트>의 주제곡이라고 하며 그 곡을 채플린이 직접 작곡하였다고 소개하였다. 채플린이 이런 아름다운 곡을 작곡도 했었나 놀라며 다시 듣곤 하였다.

 라임라이트는 영화의 배경인 1914년 당시 무대조명으로 요즘의 스포트라이트에 해당한다. <라임라이트> 테마곡은 두 가지 멜로디로 되어 있는데, 시작할 때 한동안 약간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드는 하강적인 멜로디로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날렵하게 상승하는 멜로디로 발전한다. 이 두 대조적인 멜로디가 이어지는 느낌은 마치 처음 하늘을 나는 어린 새가 날기를 두려워하다가 어느새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며 가볍게 날아오르는 모습, 혹은 척박한 땅을 뚫고 솟아오른 가녀린 꽃대에서 한 순간 청초한 꽃망울이 터트려지는 모습 같다.

 주제곡을 듣다 보니 영화도 궁금해져 찾아서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주제곡의 두 부분이 연속적으로 흐르지 않고 따로따로 나온다. 무겁고 하강하는 멜로디는 주로 나이든 코미디언 칼베로가 등장하는 장면에 흐른다. 한 때 유명했으나 인기도 식고 술에 의지해 삶을 버티던 그는 우연히 아래층 발레리나 테리를 자살시도에서 구해주게 되는데, 기력을 잃고 침대에 누워 있는 테리를 칼베로가 근심스럽게 돌봐주는 장면에서 이 멜로디가 나온다. 또 텅 빈 객석을 뒤로 한 채 무대에서 내려온 칼베로가 분장실에서 화장을 지우는 순간이나 이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테리와 대조적으로 조명이 꺼진 극장에 홀로 남겨진 그가 남모르게 눈물을 훔칠 때 그리고 자신의 배역이 다른 배우에게 넘어가게 되는 서글프고 절망적인 순간, 주제곡의 무거운 멜로디 부분이 흐른다.

 그에 비해 가볍게 상승하는 선율은 오프닝크레디트 때 말고는 테리가 무대에 올라 라임라이트를 받는 순간에만 흘러나온다. 그녀가 두려움과 절망을 딛고 진정한 예술가로 일어서는 순간이나 주연 발레리나로 화려한 조명과 온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순간 그리고 영화 엔딩 신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친 칼베로가 무대 곁에서 죽어갈 때 자신의 차례가 되어 무대에서 춤을 추는 동안 상승하는 선율이 흐른다.

 칼베로와 테리를 감싸는 주제곡의 두 멜로디는 영화 자막 "라임라이트 조명 아래, 세월은 젊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The glamour of limelight from which age must pass as youth enters..." 처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삶의 무대 안과 밖의 선율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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