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해를 돌아보니 우선 각각의 일에서 내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만은 후회 없이 내 전부를 쏟았다 싶은 게 있나 떠올려보니 어느 하나 온 정성으로 한 게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지내는 동안 정말 행복했던 일들도 물론 있었지만, 많은 경우 해야만 되는 일로 강박에 쫓겨 겨우겨우 처리해나갔지 애착과 열정이 부족했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1831)에 나오는 시인 그랑그루아는 "군인이 되었지만, 난 충분히 용감하지 못했어요. 수도사도 되어보았지만, 난 신앙심이 깊질 못했어요. 목수도 되려고 했지만, 난 힘이 세질 못했어요. 더군다나 술도 제대로 마시질 못해요. 얼마쯤 뒤에 나는 무엇을 하든 뭔가가 항상 모자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깨달음 후에 나는 시인이 되었답니다."라며 매사 열정이 충분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는데, 그에게서 모든 일에 철저하지 못하고 뭔가 조금 모자랐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고, 엄청나게 많은 일과 모임에 속해 있었고, 도대체 어떻게 저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해냈다. 각각의 일에서는 많이 부족했지만 내 삶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내가 평소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 많은 허물들이 덮여지고 그 많은 일들이 무사히 지나간 데에 깊이 감사한다.

 2차 대전 초 독일에 점령당한 덩케르크에서의 영국군 구조작전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덩케르크>(2017)는 영국 패잔병들이 고국으로 살아 돌아가는 것 자체가 사활을 건 전투의 승리와 같았던 당시 상황을 숨죽이게 하는 긴장 속에 생생하게 전해준다. 영화에서 독일 공군의 폭격을 저지하기 위해 추격하다 바다에 추락한 영국 공군조종사 콜린스는 작은 민간 구조선의 선주인 도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구조된다.

 겨우 살아 돌아온 콜린스가 공군 복 입은 것을 보고 누군가 "공군은 뭐 했나"하고 비난하자, 도슨은 그에게 "신경 쓰지 말게. 우린 아니까."라며 위로해준다. 도슨의 이 한 마디는 마치 지나온 시간 각각의 일에서 많이 부족했지만 그 모든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위로로 스며들어 지치고 서운했던 나의 마음을 어느새 녹여주었다.

 새해의 페이지를 열며 올해 내 삶을 바꿀 단 한 가지 결정을 선택하라면, 그것은 정성어린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벨의 제사에서 하나님이 보신 것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드리려는 그의 마음이라는 새해 첫 주일 설교말씀을 듣는 순간, 늘 허둥대고 밀린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해하다 어느 순간 무엇이 보다 본질적인 것인지도 잊고, 나에게 가장 귀한 분들에게도 정성 어린 마음을 드리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회한의 눈물이 흘렀다. 부디 새해에는 내게 주신 소중한 인연과 귀한 사명을 향한 정성 어린 마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