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쓸데없는 짓인 줄 왜 모르겠는가. 그러면서도 연초가 되면 늘 궁금해지는 것이 올해의 운세이다. 마음에만 있고 자주 오가지 못하던 친구가 찾아왔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적이 없는 그녀가 갑자기 하룻밤 자고 가겠다니 불안한 그림자가 밀려왔다. 예전에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화를 삭이고 싶을 때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도 했었기에 그녀도 그런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했다.

 큰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자모로 만나 가족 모두 더없이 친밀하게 지냈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생면부지의 강원도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기에 정이 더 깊어졌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 또 뿔뿔이 흩어져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묻는 사이이다. 그 집도 우리 집도 아이들이 다 자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남편도 정년 없이 건재하게 일하고 있으니 이제 한시름 놓고 살만한 시간이 되기도 했다.

 사람의 욕심과 걱정은 끝이 없는 것인 모양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급한 불은 다 끄고 자신을 위한 여가의 시간을 가질 때인데 아이들 결혼 문제로 잠이 오질 않는단다. 우리 집 큰 녀석은 아들이지만 나도 은근히 늦어지는 결혼에 걱정이 되는데 그 집은 딸애가 서른 중반이 됐으니 왜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아이들을 결혼시키는 일은 전투를 치루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우리 때에는 여자 나이 스물다섯만 넘으면 노처녀라고 어머니들 시름이 땅에까지 내려왔었는데 서른 중반이나 된 딸을 가진 엄마 마음은 전장에서 모든 영토를 잃고 마지막 고지를 사수하려는 결사의 자세가 되고 만다. 정작 본인들은 결혼에는 관심도 없으니 부모들은 올해는 방 빼라고 아우성을 치다가 서로 부딪치고 서로 상처입고 뉘집 자식 결혼시킨다는 말만 들으면 부아가 치밀어 그날은 한바탕 집구석이 뒤집히곤 한다.

 요즘 결혼상담소에 넘쳐나는 것이 잘나가는 노처녀들이란다. 학업과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좋은 직장도 얻고 돈도 벌었는데 신랑감을 놓친 골드미스들. 그 골드가 유리구슬만도 못하게 넘쳐나는 세상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운세를 보러 나섰다. 가는 내내 서로 말이 없다. 출세를 한다는 말도 돈을 많이 번다는 말도 필요 없다. 올해는 자식이 결혼을 하겠는가만 알면 좋겠다.

 쭈볏쭈뼛 자리에 앉는데 운세를 보시는 분이 "남편이 바람 폈군."한다. 샐샐 웃고 들어가면 물장사라고 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들어가면 남편과 문제 있다고 넘겨짚는 것 아니겠는가. 그 집 큰 아이와 우리 집 큰아이가 동갑이고 작은 아이들끼리 동갑이다. 그래도 각자 타고난 사주팔자가 다를텐데 똑같이 출력된 운세 종이를 내준다. 경치구경한 값 냈다고 치자며 마주보고 웃었다. 그래도 올해는 결혼한다니 믿어보자.

 밤새 두런두런 지난 이야기를 펼치며 우리에게도 결혼의 설레던 시절도 꽃 같은 새댁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찾아 읽는다. 넘겨야할 그 다음 페이지가 늘 궁금해서 살짝 들쳐보는 것이 신년운세 아니겠는가. 언제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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