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판옥선에 철판덮개 씌워 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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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龜船]이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태종 때인데, 1413년(태종13년)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귀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연습을 하는 모양을 보았다 는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후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이를 개량하고 임진왜란 때 실전에 사용하게 됨에 따라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거북선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795년(정조19)에 편찬된 '충무공전서'에 실린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모습을 통해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거북선은 이를토대로 하여 복원이 되었다.
거북선의 규모나 기본 구조는 판옥선과 유사하다. 즉, 좌우 측면부분인 삼판을 가룡으로 서로 연결해 횡강력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상장의 너비를 하체의 너비보다 넓게 해 그 사이로 노를 내밀도록 하여 적선과의 충돌 시 노를 보호할 수 있는 등 판옥선 구조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앞부분에는 용머리를 부착하고 전후좌우에 14개의 화포를 장착하였으며, 위쪽은 개판을 씌우고 그 위에 송곳을 박아놓음으로써 전함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하였다.
거북선은 당시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가장 강력한 전함이었다. 중세시대 해전의 양상은 전선(戰船)끼리 서로 포를 쏴 격침시키는 방식이 아닌 전선 위로 수병들이 올라가 육탄전을 통해 전선을 점령하는 방식이 주중을 이루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사용했던 전투방식은 이와 같은 육탄전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통해 이런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전투 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거북선의 선체는 두께 12㎝이상인 소나무(비중 0.73)의 단단한 목질을 이용했기 때문에 삼나무(비중 0.41∼0.47)로 만든 왜선과 충돌하면 대부분 왜선들이 부서지고 격침되었다. 다시말해서 소재와 설계면에서는 단연 우수하여 돌격용(突擊用)으로서의 충돌 전술(衝突 戰術)이 매우 뛰어 났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전술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를 거북선 아래로 젓게 만들어 선체가 충돌할 때 노가 부러지는 것을 막았으며, 배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앞부분 하단에는 쇠로 만든 귀면(鬼面)을 두어 왜선과 충돌할 때 그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거북선의 공격력도 동시대의 어떠한 함정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력했는데, 거북선의 선체에는 좌우에 14개의 화포를 장착하여 왜선이 어느 곳에 있던지 공격할 수 있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전투에 사용될 때 가장 먼저 적 함대의 진영으로 돌진하여 적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때 두껍게 제작된 외판은 적함과 부딪혀도 쉽게 깨지지 않았고, 전후좌우의 대포는 적 진영의 가운데에 있어도 사방의 적을 공격할 수 있었으며, 철판을 씌우고 송곳을 박아놓은 개판으로 인해 적군의 승선이 차단됨으로써 아군을 보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 ▲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