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최근 네덜란드 출신 초현실주의 판화가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 특별전에 가서 반복과 대칭, 불가능한 공간 착시를 일으키는 작가 고유의 판화 스타일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의 초기 판화들에서 풍경은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었지만, 계단이 많은 경사진 골목집, 가파른 절벽 위의 마을과 집 등의 입체적인 공간감은 훗날 그의 초현실주의적 공간 착시 그림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의 작품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도형을 서로 겹쳐지지 않게 빈틈없이 채우는 테셀레이션tessellation 방식은 그가 스페인 그라나다 여행 중 14세기 이슬람 궁전 알람브라에서 본 무어인들이 만든 아라베스크 무늬에서 결정적인 영감을 받았다 한다. 그는 1936년 알람브라 궁전을 두 번째로 여행한 후부터 평면분할 방식의 기하학적 무늬를 작품에 도입하기 시작하여 그만의 고유한 교차와 반복의 패턴을 고도화시켜가고, 불가능한 공간의 초현실적 결합이 주는 환영을 창조해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리는 손>(1948, 석판화, 74×59)은 종이 위에 소맷자락을 그리고 있는 손이 그려진 그림으로 전체 작품의 틀 속에 또 하나의 틀이 삽입되어 있는 예술구성방식인 미자나빔mise en abyme을 보여준다. 그림에는 손이 두 개 그려져 있는데, 오른손을 중심으로 보면 그 손이 종이 위의 소매 밖으로 나온 왼손을 그리고 있고, 왼손을 중심으로 보면 그 손이 오른손의 소맷자락을 그리고 있어 어느 손을 중심으로 보더라도 완전한 상대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각각의 손이 그리고 있는 평면의 그림을 보면 한 손이 다른 한 손의 소맷자락을 그리고 다른 한 손은 바로 자신의 소맷자락을 그리는 손의 소맷자락을 그리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관계가 역전되면서 이어진다. 왼손과 오른손은 상대 손에 의해 그려짐으로써 존재하게 되고 또 그 자신은 다른 손을 존재하게 해주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연결된다.

 또한 그림 속 두 손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착시를 표현한다. 그림에서 평면의 종이 위에 그려진 손 그림은 어느새 그림 밖에서 그림을 그리는 손이 되고 그리는 손은 다시 그림 위에 그려진 손이 되어 종이 위의 평면과 종이 바깥의 입체 공간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한한 반복을 이룬다. 2차원과 3차원의 영원한 순환을 담은 에셔의 <그리는 손>은 미자나빔에 그림의 안과 밖이 끊임없이 뒤바뀌며 순환되는 뫼비우스의 면모를 하나 더 추가해준다. 물론 평면의 작품 안에서의 이야기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