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나는 핀란드 헬싱키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가슴 뛰는 낯선 경험을 했다. 핀란드 외교부, 핀란드 디자인협회 등 그곳에서 만남 사람 대부분은 여성 활동가들이었다. 곳곳에 작은 도서관과 갤러리가 문화센터 기능을 하고 있었고, 추위 속에서도 학교에서는 교실보다 교실 밖에서 뛰어노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도시의 간판이 없다. 작지만 메시지가 분명한 디자인으로 특화했기 때문이다. 예술인에게는 정부와 민간과 기업의 협력을 통해 국내외 문화적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었다. 오렌지색 손잡이 가위로 유명한 공구 회사 피스카스(Fiskars)의 공장 지대였던 피스카스빌리지. 숲과 계곡에 위치한 이곳은 핀란드 디자인의 산실이다. 옛 공장과 창고건물을 활용해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는 곳이다.

 작가의 집을 들렀을 때는 아기자기한 공간, 이들만의 전통 사우나 시설까지 갖춘 미니멀리즘에 삶의 향기가 묻어있다. 작지만 알찬 나라,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낯선 방랑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그들의 배려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잘 가꾸어진 사회적 시스템 때문이다. 사회주택인 '아라바 주택'은 핀란드 사람들의 사회적 안정과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중산층과 저소득 봉급생활자들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슬럼가가 없다. 젊은이와 학생들에게도 주택을 지원하면서 사회의 안정과 통합에 일조하고 있다.

 24시간 서비스주택을 통해 육아, 노인, 환자 등 맞춤형 복지를 일구고 있고 육아에서부터 대학까지 논스톱 무상교육이 정착됐다. 특히 부모들이 탁아 문제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법률로 지원하고 있다. 탁아서비스, 가정양육수당, 아빠 육아휴가, 무료 산모용품, 무료학교급식, 가정간호수당 등…. 핀란드 여성의 상당수가 직업을 갖는 등 사회적 참여가 높은 이유다.

 11월 운동은 매년 11월 7일에 열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날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정책을 만들어 발표한다. 그들에겐 3퍼센트 이론이 있다. 사회적 약자 3%를 위한 전략적이고 집중적인 투자가 사회전반에 긍정의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무직·무연고·무자산의 약자를 위한 지원책 마련에 끝없이 고민한다. 저소득 빈곤층 근절을 위한 노력이 최우선 정책이다. 여가시간과 직업 관련 활동을 강화하고 청년층 워크숍과 네트워크를 확대하는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국민 77%가 매일 1시간 이상 책을 읽는 독서 강국이다. 마을마다 시민들을 위한 문화학교가 있고 성인들을 위한 인생 2모작, 3모작이 활발히 전개된다. 핀란드만의 디자인과 기술은 ICT 산업과 연계해 그들을 부강하게 만든다. 낮고 느림의 미학, 작은 것에서부터의 관심과 배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함께 걷는 길,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핀란드는 이러한 소소한 풍경이 모여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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