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얼마 전 모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기획한 춘계 건축답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생 뿐 아니라 고등학교 3개교 건축동아리 학생들을 초청하여 함께 진행되는 활동이기에 고교생들의 건축에 대한 소양 확장 및 진로 탐색을 위한 연계 교육으로 매우 의미 있는 답사가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헤이리 예술 마을에 가기 전에 파주 출판도시에 들러 아름다운 건축물 뿐 아니라 출판 문화정보를 접하게 되어 기대가 컸다.

 어느덧 파주시 문발동에 도착하니 '2018 책의 해'라는 대형 문구가 출판도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산뜻한 지혜의 숲에 들어서니 까맣게 올려다보는 서가에 촘촘히 자리한 책들이 인류의 도전과 꿈들을 말없이 보여 주었다. 딱딱한 서점이 아니라 아름다운 건물 속에 책들만을 주인처럼 진열해 놓으니 그 또한 특이한 예술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번 답사의 백미는 역시 헤이리 마을이다. 몇 번이나 가보고 싶던 곳이어서 영어마을을 지나면서 촉각을 모아 곳곳을 살펴본다. 어찌하여 헤이리의 명성이 높은가? '헤이리'는 파주 지역에서 농사지을 때 부르던 전통 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온 것으로 '열심히 일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렇듯 헤이리 예술마을은 문화와 예술 창작, 전시, 공연, 축제, 교육이 모두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예술문화 마을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살아 움직이며 낮에도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답사에 헤이리 마을을 선정한 것은 곳곳에 자리한 건축물 등이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아름다운 건축물 전시장으로, 페인트를 쓰지 않고 지상 3층 높이 이상은 짓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자연과 어울리는 건물로 설계된 점이다.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건물, 지형을 그대로 살려 비스듬히 세워진 건물, 사각형의 건물이 아닌 비정형의 건물 등 각양각색의 건축물들이 개성을 뽐내며 네모에 길들여진 영혼들을 흔들고 있다. 점심을 간단히 하고 걸어보니 헤이리의 길도 반듯하지 않고, 아스팔트도 깔지 않았다. 물길을 따라 실개천이 흐르고 그대로 살려둔 미루나무는 외롭지만 평화로워 어린 시절 살던 고향마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가장 획기적인 것은 헤이리 모든 건축물의 60%는 창작과 문화 향유 장소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가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찾아온 누구에게나 공유되고 소통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헤이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북하우스에 들러 시집 한권을 골라보았다. 프랑시스 잼의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 세 번의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나올 듯 헤이리의 거리는 꽃처럼 피어나는 집들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람은 집을 짓고 그 건축물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헤이리 마을을 보니 이제 학교 건물도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지역사회와 공유 소통하는 모습으로 지어야겠다는 생각이다. 헤이리 마을에 또 가고 싶은 것은 거기 자리한 건축물들이 생명 잃은 집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따라 변화하는 시각과 삶을 함께 담으려하기 때문이다. 충북의 각급 학교도 아이들이 오고 싶고 학부모들이 지나다 잠시라도 들러보고 싶은 소통공간으로 탈바꿈, 이름하여 '헤이리 학교'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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