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유월을 까먹으며 / 솔깃한 겉칠로 눈부시다 / 도장 찍고 복사까지 '떡 줄 사람과 김칫국' 과속? / 느닷없는 뒷발질에 / 내일 운세가 궁금하다. '찬물을 퍼부어도 소리내지마라'/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안절부절도 고되다 / 필자의 시 '통일 걸음' 일부다. 군복차림 소년단원 수만 명의 충성 맹세와 함께 울음을 터뜨린 북한관련 뉴스에 '아니, 저럴 수가, 우리 아이들 운동장에서 공을 찰 때 너희는 군인 됐구나…'

 섬뜩 했던 기억 뒤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평화 약속은 세상에 하나뿐인 걸작 명화다. 1953년 6·25전쟁 정전 후 처음 남·북 정상은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이나 군사분계선을 번갈아 넘으며 얼싸 안았다. 친교 산책·도보다리 위 담소·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누가 채점해도 최고점 맞다. 비핵화와 전쟁종식·남북 평화 실험구도에 걸핏하면 태클을 걸어 대화기류를 '썰렁'과 '환호'로 졸여왔다. "외교술은 복잡한 댄스와 같다"는 캐서린 문(미국 브루킹스 연구원)의 기고처럼 남·북·미 게임을 추스릴 무기 역시 '노련하게 밀고 당길 전술 능력' 아닐까.

 시나브로 잊혀진 6월을 비집고 들어온 '기회주의적 애국심', 순국선열 넋 앞에 부끄럽다. 폭침돼 두 동강 난 천안함 46명의 무고한 우리 병사는 물살 센 바다에 명찰만을 불린 채 영원한 별로 잠든 지 8년 일기를 썼다. 당시, 함장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다친 부하에게 주어 구조와 탈출을 지휘했고 고참 부사관들 역시 "저 체온 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절대로 물에 뛰어내리지 마라"며 승조원들을 매뉴얼 이상으로 도왔다. 스스로를 준엄하게 달군 조국 수호의 불사조인 한주호 해군 준위, 끝내 자신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조국은혜로 살아 있다. 거기에  "본 때를 보여 주겠다"며 전역을 연기한 장병,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간다"는 2030젊은 애국 그리고 국민 저력까지 일등 방패였다. "우리 아들 아직 바다에서 살아요" 흉부 깊이 파고든 보훈가족의 통곡 메시지를 잊은 건 아닌지 미안하다.

 한 때는 경의선과 동해선이 금단의 땅을 뚫어 기차소리를 냈고 금강산 육로관광으로 비무장 지대 녹슨 철모 곁 해살이풀까지 감격하는 감개도 있었다. 북한 핵 앞에 마냥 벙어리 된 채 새로운 물꼬를 트기 위해 흉흉한 앙금조차 잠재워온 세월 아닌가. 강의 끝 무렵 대학생 몇 명에게 '판문점 회담'을 던졌다. "평화에 도움은 맞지만 쉼표가 필요하다. 고민 흔적도 없이 한 쪽에서 서두르다 보면 자칫 반복된 실수"를 염려했다.

 왜 일까? 아직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 냉철함을 잊은 듯 중앙정부·지자체 할 것 없이 '희망사업' 명찰을 달고 어설픈 교류를 선거 이슈화하는 등 중구난방(衆口難防)식 대북 포퓰리즘으로 넘쳐난다. 비용계산을 못할 정도의 혼선만 부추긴다. 남북 간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평화협정 수순 밟기를 선언했으니 공동번영과 자주통일 프로세스까지 낭패 쯤 절대 없어야할 텐데, 너무 유별나서 걱정이다. 멀리 크게 바라봐야 한다. 평정심에서 유월 심장을 찾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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