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5월 대관령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1989년 개장한 우리나라 1호 휴양림인 이곳은 금강송 군락지로 그중 일부는 1920년대부터 인공적으로 조성하였다. 금강송은 다른 소나무들과 달리 수직으로 곧게 쭉쭉 자라는 게 특징이다. 휴양림을 산책하다보니 온통 금강송이 가득하고 한 아름에 안기 어려울 정도로 굵은 고목들도 많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송 군락지를 봉산(封山)으로 지정하여 궁궐이나 특별한 건축에만 벌채를 허용하였다 하고 지금도 금강송 아름드리는 문화재 복원에 귀하게 쓰인다.

 산책길에 우연히 숲 해설사가 이끄는 모임을 만났다. 잠시 설명을 듣다 자리를 뜨려는데 마침 해설사가 큰 솔방울 하나가 담긴 빈 페트병을 흔들어 보이며 일행 중 한 꼬마에게 "어떻게 이 큰 솔방울을 좁은 병 입구로 넣었을까?"하신다. 그 질문에 나도 그 비결이 궁금해져 발길을 멈추었다. 곧 해설사는 솔방울은 습도가 높으면 비늘이 오므라들고 건조하면 벌어진다며 닫혀있을 때 병목에 넣은 솔방울이 습기가 마르면서 비늘이 벌어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솔방울이 습도에 따라 벌어졌다 닫혔다 한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솔방울 움직임은 트로피즘tropism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굴성, 향성으로 번역되는 생물학 용어 트로피즘은 식물이나 동물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는 굴곡운동이나 반응을 뜻한다. 식물이 햇빛을 향해 뻗어가거나 혹은 땅속으로 굽어지는 것이 그 예다. 솔방울의 움직임은 습도에 대해 나타내는 굴성이라 하겠다.

 솔방울 트로피즘은 사실 소나무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솔방울은 소나무 암꽃이 발달한 것인데 처음에는 표면의 비늘이 단단히 붙어 있다가 익으면서 점점 벌어진다. 비늘이 벌어질 때 비늘 안쪽에 붙어 있던 씨가 떨어져 번식한다. 이때 솔방울은 습기나 수분의 자극에 섬세하게 반응하여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을 때는 닫혀 있다가 습도가 낮고 바람이 잘 불 때 활짝 벌어져 날개달린 씨가 어미 소나무 바로 밑에 떨어지지 않고 바람에 멀리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날 휴양림에서 주워온 딱딱한 솔방울을 조금 전 물에 담그니 놀랍게도 비늘이 서서히 오므라들더니 좁고 길쭉한 솔방울이 된다. 수분이 증발함에 따라 바깥 조직이 상대적으로 더 건조하여 밖으로 벌어지는 신비로운 비늘조직 덕분에 솔방울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여전히 트로피즘을 보여준다.

 프랑스 문학가 나탈리 사로트는 트로피즘을 인간과 삶에 적용하여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을 때 반응하는 움직임을 트로피즘이라 명명하고 평생 자신의 작품 주제로 삼았다. 작가의 첫 작품 제목도 <트로피즘>(1939)이다. 작가는 트로피즘이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간과 도처 모든 사물에서 일어난다고 보고 포도송이처럼 증식하다 합쳐지는 양상이나 마그마처럼 흐르거나 굳어지는 양상 등 다양한 비유적 이미지로 이를 묘사한다. 생각해보면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넓은 의미에서 트로피즘은 인간과 동식물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