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청주대 교수

지난 31일 치러진 초ㆍ중생 대상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두고 교육계가 시끄럽다.

교육당국의 진단평가 강행에 대해 한국교총은 지지를 표명한 반면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은 이에 반대해 시험 당일 체험학습 등을 떠났다.

교육계의 이 같은 충돌을 보며 먼저 우리 교육현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공교육은 이미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우리 아이들은 사교육에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잠자고 학원가서는 공부한다고 하고, 선생님이 체벌을 하면 왜 때리냐고 대들어도 학원에서의 체벌은 감내한다고도 한다.

요즘은 초, 중, 고교생뿐만 아니라 유치원생들까지 사교육에 내몰리고 있다. 이는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가계 수입의 30~50%를 교육비에 투자하는 경우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뿐인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가족이 생이별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혹은 영어 때문에, 혹은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만 때문에 기러기 아빠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간다. 그런데 투자한 만큼 교육적 효과를 얻는 것 같지는 않다. 교육은 지식만이 다가 아닌데도 우리 사회는 입시의 틀에 갇혀 지식의 계량화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청소년들의 꿈을 키우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넒은 안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는 학생들이 각자의 특성과 능력을 찾아 계발할 수 있도록 학교, 가정,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이룰 수 있다.

이성적 측면이 발달한 사람은 논리적이어서 국, 영, 수 과목에 강점인 반면, 감성적 측면이 발달된 사람은 예술적 성향이 강해 음악, 미술, 체육 등에 강점이 있다. 이처럼 사람은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획일적인 교육으로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 우리 아이들을 내몰고 있다.

전교 석차, 반 석차보다 학생 개개인의 과목별 이해력과 성취도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해서 학생들한테 맞는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학생 개인별 차이를 인정하고 난이도별 수업지도가 절실하나 우리의 교육은 그러지 못하다. 선생님들은 과중한 업무와 교육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 학생들은 개인적 이기심만 높을 뿐, 꿈도 없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다. 체격은 옛날보다 커졌지만 이와는 반대로 정신 연령은 점점 낮아져 의존성은 높아지고, 문제 해결 능력은 떨어진다.

족집게 학원이라고 소문이 나면 학생들과 부모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과정보다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생활하기 보다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취하려는 사고가 만연하고 있다. 이같은 성적지향주의 속에 소위 일류대에 다니고, 정계, 재계, 법조계에 진출해 소위 사회 지도층이 되어도 이들은 국민들에게 존중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권력을 가졌다 해도 신뢰와 존중받지 못한다면 진정한 성공을 이뤘다 할 수 없다.

어떤 사고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아니라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정답만 추구하도록 학생들을 내모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성공한 인재를 키우기가 어렵다.

어느 나라든 비슷하겠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인재 양성만이 살 길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키워낼 수 있을까?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해도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 때문에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이 밤늦게까지 학교와 학원에 매달려 있는 것이 방법은 아닐 것이다.

교육 당국의 말대로 진단 평가가 지역 간 학력차이를 해소하고, 학력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여 교육과정 등 정책을 수립하고 학력 부진 학생을 위한 교육 자료로 충실히 활용되기 바라며, 서열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학교 교육, 가정 교육, 사회 교육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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