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행복했다. 탄성을 질렀다. 공연당일 갑자기 표를 구한 터라 온통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혼자 달랑 앉았다. 곁을 보니 부부동반인 듯, 친구들과의 합석인 듯, 자기들끼리 떠들썩하다. 멋쩍은 느낌도 잠시, 시작과 함께 동행이 시작되었다. 모든 감각은 무대를 향했고, 의식은 하염없이 과거로 거슬러 시공을 초월했다. 그들의 노래는 단숨에 우리를 40년 전으로 데려갔다. 부르는 노래마다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다 보니 때로는 복받쳐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어르신교통카드 소지자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리만치 젊은, 김세환 씨가 시작을 했고, 윤형주 씨가 합류했다. 중간 중간에 세시봉 그룹의 동반자였던 사람들을 재미있게 소개했다. 사면이 바다인 울릉도 산 위에 연못을 가꾸고 게서 낚시를 즐긴다는 이장희씨 소식, 뉴스를 통해 알다시피 그림으로 곤욕을 치루고 있는 조영남씨 뒷담, 고려인 같은 옷을 입고 팔을 휘두른다는 송창식씨 등 함께 노래했던 이들과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얘기도 따뜻했다.

세시봉은 프랑스어로 '멋지다, 아주 좋다'는 뜻이라는데 공연 내내 '세시봉'이라는 단어를 브라보 보다 더 많이 외쳤다. 윤형주씨의 광고노래가 나오자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윤동주 시인의 육촌 동생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육촌이라면 같은 증조부의 자손이기에 나이차가 많을 수도 있지만 동주형님이라는 말이 생경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리는 그 먼 옛날 사람, 윤동주 시인의 혈육이었다니 모든 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교과서에 나온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며 패, 경, 옥 이런 이국적 이름자가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청춘에 스러진 독립운동가 시인 윤동주의 짧은 생애가 애처로웠다. 겨울을 '일제 치하'로, 나의 별은 '대한민국'으로, 봄이 오면 을 '해방'으로 해석해주시던 국어 선생님의 분기탱천, 쟁쟁한 목소리가 사십여 년을 넘어 방금 도착한 듯 가슴에 메아리쳤다.

마성의 미성으로 알려진 윤형주 씨의 노래는 계속되었고 그 노래 속에 어린 윤동주로부터 백 년을 지나온 세월을 엿보았다. 형언하기 힘든 감동이 목울대를 채웠다. 그의 시 참회록에서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라고 말하던 윤동주 시인은 무엇이 그토록 부끄러웠을까.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는 윤동주의 이십대, 온통 취업의 경쟁에만 취해있는 지금의 젊은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나이에 스러진 윤동주가 생각한 세상은 지금 여기에 있는지. 죽은 지 열흘 후에 시신을 인수해 가라는 연락을 받고 싸늘한 주검을 가슴에 안았던 아비의 슬픔 또한 시가 된다. 그 시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다시 윤동주의 시를 읊는다. 언젠가 흰옷을 입고 그의 시를 암송해보리라. 나 또한 부끄러우므로.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