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하지가 다가오는 일요일 아침, 강서구 가양동 양천향교 뒤편 궁산을 찾았다. 야트막한 산에 오르다보니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동쪽 기슭에 소악루(小岳樓)라는 정자가 있다. 원래 1737년경 이유(李楡)가 자신의 집 뒷동산에 지었던 누정을 최근 현 위치에 재건한 것인데,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 풍경이 중국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동정호 광활한 절경에 견줄만하다 하여 소악루라 지었다 한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65세에서 70세까지 이곳 양천현령으로 지내면서 한강 주변 아름다운 풍경을 두루 그림으로 남겼다. 소악루 난간에는 이 시기 정선과 이병연이 서로 그림과 시를 주고받은 것으로 엮은 화첩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실린 한강 풍경 두 그림 <안현석봉>과 <소악후월>을 소개해놓은 안내판이 있었다. 나도 정자에서 발걸음을 멈춰 서서 정선이 진경산수화에 담아낸 한강 주변을 두루 둘러보았다. 강폭이 넓어진 한강 저 너머로 겹겹의 산 능선이 너울거리며 이어져 있고 아침 해가 산 위로 둥실 떠올라 있다. 그래도 옅은 구름이 온 하늘에 퍼져 있어 햇살이 눈부시지 않게 번져 나와 잔잔한 강호에 은은한 운치를 더해주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다다른 소악루에서 당시 중국의 화풍을 그대로 답습하던 관행을 벗고 풍경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 그려나가면서 조선 진경산수화를 창시한 정선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보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린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이 작품들이 소장된 간송미술관은 연 2회 정기전시를 한다. 이전에 간송전을 본 적은 있지만 이곳 한강 풍경 그림들을 특별히 주의해서 보지는 않았다. 올해 간송 전시를 검색해보니 마침 대구미술관에서 하고 있었다. 전시작품 목록에 『경교명승첩』도 나와 있는데다 김환기 작가전도 같은 데서 하고 있어 직접 전시를 보고 왔다.

대구 간송전에는 <소악후월>, <안현석봉>은 없고 대신 『경교명승첩』 중 정선이 궁산에서 한강과 목멱산(남산) 너머로 막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담은 <목멱조돈木覓朝暾>(1741년, 비단에 채색, 29.2 x 23.0㎝)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 왼편에 이병연의 화시(畵詩)가 “曙色浮江漢, 觚稜隱釣參, 朝朝轉危坐, 初日上終南(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 우뚝 앉으면, 첫 햇살 남산에서 오르네)”가 적혀있었다.

<소악후월>이나 <안현석봉>에는 소악루가 직접 등장하는 대신 소악루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강과 소악루를 함께 아우르며 관망하는 감상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면 <목멱조돈>에는 소악루가 등장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로 소악루나 근처 궁산 기슭에서 바라본 경치라는 인상을 준다. 이 그림에는 내가 소악루에서 내려다보던 한강과 그 너머의 산 능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하지만 화가는 모든 풍경을 있는 그대로만 그리지는 않고 막 해가 뒤에서 떠오르는 남산을 마치 줌인zoom in하듯 한강 바로 가까이에 우뚝하니 크게 그리고 진한 농도로 강조하면서 보이는 대로의 풍경에 산뜻한 정감의 일탈을 가미한다.

▲정선의 <목멱조돈>                                  ▲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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