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박평래는 암요, 똥이 기름져서 해 전이믄 충분합니다요.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마님이 즘심부터 먹으래유."
점순이가 정지에서 나와 오리처럼 궁둥이를 뒤로 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또, 또! 저 눔의 지지바 쫑알거리는 말버릇 좀 보라지……"
박평래는 갑자기 시장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마른 입맛을 다셨다. 구부정한 허리에 뒷짐을 지고 잰 걸음으로 작약밭 앞을 돌아서 뒤안으로 들어갔다. 서늘하게 그늘이 져 있는 뒤안에는 한 해에 감을 한 동 이상 따는 감나무가 두 그루 서 있다.
"인분 푸는 일이 보통 심든 일은 아니잖유, 밥상 채려 놓았응께 즘심부터 드시고 일을 하셔유."
박평래가 뒤안으로 오는 인기척에 옥천댁이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옥천댁은 박평래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정지문에 매달린 동그란 무쇠손잡이를 잡은 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은 츤츤이 먹어도 되는데……"
좁은 툇마루에는 개다리소반에 점심이 차려 있다. 박평래는 밥상을 보는 순간 주책없게 배에서 꼬르락 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뒷머리를 실실 긁으며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밥이며 반찬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 보다 푸짐하고 기름지다.
면장댁의 밥상이 다른 집보다 푸짐하다는 걸 모산 사람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농사꾼들에게 있어서 일 년 중에 가장 중요하고 바쁜 날은 모내기 날이다. 이 날 점심은 어느 집이나 양곡상회에서 선금을 내오는 한이 있더라도 비린내 나는 반찬이 올라오게 마련이다. 여느 집들에 꽁치토막이 올라오면 면장댁은 고등어자반이나 기름 끼가 둥둥 뜨는 돼지 고깃국이 올라온다. 오전 새참 때 주는 담배도 다른 집에서 풍년초를 한 봉씩 주면, 면장댁에서는 두 봉씩을 주거나 권련이라고 부르는 파랑새 담배를 준다.
"짝게 먹고 짝게 싸는 것이 오래 사는 방법여. 오래 살라믄 면장댁 일을 안 하는 거이 좋지.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위디 그려. 자로 잰것츠름은 살 수 없는 거 잖여. 몸이 좀 고되기는 하지만 면장댁 일을 해야 난중에 아쉬운 부탁이라도 할 수 있잖여."
모산 사람들은 더 좋은 반찬이며 담배를 받은 것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온종일 해 볼 틈도 없이 일을 하면 곱절의 품삯을 받아도 시원치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병호 땅 도지를 붙이고 있는데다 학산면사무소에서 부면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이병호의 아들 이동하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서, 힘이 들더라도 면장댁의 일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오늘 점심상은 다른 날과 비교를 할 수 없을 만큼 유난히 기름지고 풍성했다. 참기름을 번지르하게 바른 김이 몇 장 올라온 것만 해도 황송할 지경인데 고등어자반이 한 토막이나 올라왔다. 깨를 솔솔 뿌린 볶음 멸치에 실고추를 뿌린 마늘종지 볶음하며 반듯하게 썰어 놓은 배추김치에 밥은 고봉이다. 다른 날처럼 보리 한 톨 섞이지 않고 자기네들이 삼시 세 때 먹는 하얀 쌀밥을 대접에 꾹꾹 눌러 고봉으로 퍼 담았다. 그것만 해도 황송할 지경인데반주로 막걸리를 반 주전자나 내 놓았다.
박평래는 점심을 먹고 나니까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산들바람에 감나무가지가 간지럽다고 몸을 비틀면서 그늘에 뽀얀 햇살을 뿌렸다. 크윽! 배부른 트림을 하고 나니까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내려앉는 양지쪽에 누워 낮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밥값은 해야 한다는 된다는 생각에 엽연초를 비벼서 곰방대에 넣으며 곧장 뒷간으로 갔다.
면장댁 사람들은 다른 집들처럼 뒤를 보고 지푸라기를 사용해서 닦아 내지 않는다. 이동하가 면사무소에서 가져오는 파지나 신문지를 이용하는 까닭에 똥을 푸기도 수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