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아내는 23년째 금딱지 타령이다. 결혼식 날 예식장에서 금반지 끼어준 게 전부였으니 틈만 나면 반지든 팔찌든 목걸이든 금딱지 붙은 것 좀 선물하라며 눈을 흘긴다. 여자가 눈을 흘기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근본없는 사내는 들은 척 만 척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결혼식 예물로 받은 시계와 반지도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게 거추장스럽다며 내팽개친 마당에 아내가 사 달라고 해서 선뜻 금방으로 달려갈 놈이 아니다.

무진장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던 그날 저녁, 원로 화백 부부를 모시고 외곽의 호젓한 식당으로 갔다. 불고기에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대접하고 싶었다. 나이 들수록 외로움을 많이 탄다. 못 먹어서 수척해 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그리워서 온 몸에 마른 장작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 동네 어른을 찾아뵙고 말동무가 돼 준다.

우리는 준비된 음식을 먹고 마셨다.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며 많은 이야기꽃을 피었다. 커피도 한 잔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작품세계에 대해, 지나온 날에 대해, 앞으로의 갈 길에 대해 앙가슴 뛰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 근황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캐물었다. 건강은 좋아졌는지, 이어령 선생과는 자주 만나는지, 고향 초정에서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지, 글을 쓰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묻고 또 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집은 짓는다. 시인은 글밭을 가꾸며 언어의 집을 짓는다. 농부는 밭가는 것을 경전으로 생각하고 이랑져 흐르는 들녘의 곡식을 가꾼다. 화가는 무수한 자연의 빛과 색의 음영을 찾아 자신만의 시선으로 화폭에 담는다. 어부 산티아고에게 드넓은 카리브해는 고기를 낚고 석양을 보며 노래하는 희망의 집이다. 삶이라는 노정에 무슨 우열이 있고 정답이 있겠는가. 내가 가는 길이 언제나 희망이고 사랑이 아닐까.

원로 화백과 글쟁이 청년이 만나 무슨 이야기꽃을 피울까 싶지만 서로의 가치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이야기는 풍성하다. 식사가 끝나고 해가 저물었다. 나는 원로 화백 부부를 승용차에 태워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화백의 부인께서 머뭇거리더니 손가락에 있는 은가락지 하나를 풀었다. "변 선생님, 이거 사모님 드리세요. 평생 이 은가락지 끼고 다니라고 하세요. 행복하셔야 해요"라면서 내 손에 당신의 은가락지를 꼭 쥐어 주었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당황하는 사이에 부부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내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가락지 하나가 쥐어졌다. 당신의 그 온기가 남아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고요했다.

왜 당신의 그것을 내게 건넨 것인지를 묻는 것은 사치였다. 은가락지 하나에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이 있을 것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에 쥐어진 그 애틋함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내에게 오늘의 일을, 극적인 순간의 것을 낱낱이 고백했지만 아내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 아내는 은가락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문득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울적했다.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어머니 손가락에 끼어있던 반지와 목걸이를 챙겼다. 잡풀처럼 쓰러진 어머니의 마지막 남은 그것이 내 방에 있다. 그 은가락지가 어머니 손에서 하얗게 빛나는 날이 다시 올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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