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몇 년 전 겨울 통영에 갔다 돌아오던 때였다.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오는데 저 멀리 산 능선에 보이는 작은 정자 하나가 앙상하게 드러난 겨울 산 실루엣에 멋스러운 파격을 더해주고 있는 것에 강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조금 더 가다보니 이번에는 도로변 산 중턱에 정자 하나가 마치 나무나 바위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깃들어 은근한 포인트가 되고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정자를 많이 보아왔지만 그때 처음 정자의 운치와 멋에 특별한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예로부터 정자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주변 경치를 두루 감상하도록 지어진 집이다. 산이나 바다, 마을이나 호숫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면 으레 정자가 있다. 우리나라 자연 풍광은 광대하고 장엄하다기보다 부드럽고 온화하다. 자그마한 바위나 가파른 산기슭 좁은 터에도 나무에 새가 앉듯 사뿐히 자리 잡은 소박한 정자는 작위적이거나 자연에 위압적이지 않아 우리 곁에 둘러 있는 친근한 자연과 닮은 건축이다.

정자 건축의 가장 큰 독창성은 벽과 창이 없이 바닥과 기둥, 지붕으로 되어 있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구조에 있다고 느껴진다. 보통 집들에서 벽은 안과 밖을 구분 짓고 인간과 외부 환경을 분리시키지만 정자는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어주고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이어준다. 정자에 있을 때 사람은 집 안에 아늑히 머무르면서 동시에 자연 속에 노닐 수 있게 된다.

정자는 탁 트인 곳에서 자연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시야가 완전히 열린 공간에서는 자연이 파노라마처럼 하나의 연속적인 풍경으로 느껴지지만 정자나 누각에서는 지붕과 기둥의 가로 세로 선이 풍경을 구획하는 프레임이 되어 시선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정자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사방을 둘러보며 자연을 감상하는 시점의 근원이지만 또한 그 자체로 운치를 더해주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

정자는 추위나 외부의 침입을 막아 생존을 지켜주는 집의 기본적인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건축이 아니다. 정자는 소박한 집이지만 기본 생계의 차원 너머의 인간적 가치와 여유를 추구하는 공간이다. 옛 선비들은 정자나 누각에서 자연을 감상하며 시와 그림, 음악을 짓고 함께 나누며 누정문화를 가꾸었다. 정자는 이처럼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적, 심미적 공간, 학문을 논하고 이상을 추구하던 정신성의 공간이다.

최근 충청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청주 지역 누정(樓亭)들을 찾았다. 바로 곁에서도 스쳐 지났거나 가까이 다가가보지 못했던 청주의 숨은 풍경들 곁에서 옛 누정들을 만났다. 안타깝게도 정자를 보호하는 담이 벽 없는 정자와 풍경을 갈라놓기도 하고, 출입금지 푯말이 사모하는 발길을 돌리게 하기도 하였다. 집은 사람이 살고 있으면 생기가 돌고 사람이 살지 않으면 더 쉽게 낡고 죽은 공간이 된다. 이들 정자 위에서 더 오래도록 사람과 풍경이 통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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