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박평래는 이마에서 흘러 눈썹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똥지게를 밭둑에 받쳐 놓았다. 담배 한 대 피울 겨를도 없이 조심스럽게 똥장군을 내려서 똥수례에 똥을 담았다. 똥수례를 들고 밭고랑을 걸어 다니며 똥을 뿌렸다. 어느 정도 똥장군이 비었을 때는 아예 똥장군 채 들고 다니면서 밭고랑에 똥을 뿌렸다.
똥수례를 들고 다니거나 똥장군을 만지다 보면 똥냄새는 제쳐두고 손에 똥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천상 농사꾼인 박평래는 똥이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똥이 손이나 옷에 묻으면 풀밭에 쓱쓱 문지르거나, 풀을 한 줌 뜯어서 손가락 사이에 묻어 있는 똥을 닦아내는 것으로 끝냈다.
박평래는 빈 똥장군을 지게에 얹어 놓은 후에야 비로소 풀밭에 퍼질러 앉았다. 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내 엽연초를 가루 내어 대통에 담으며 눈앞으로 푸르게 펼쳐지는 솔밭을 바라본다.
이병호 소유 산에는 다른 산과 다르게 몇 백 년은 살았음직한 소나무들이 무성하다.
소나무들 사이로 이병호 선대의 묘소가 보인다. 선대라고 해 봤자 몇 대代가 늘어서 있는 묘소는 아니다. 이병호의 부모 이복만 부부와 조부모의 산소 네 기뿐이다. 네기 모두 원래의 자리에 산소를 썼던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이장을 해 온 것이다. 조부모의 산소는 후지모도로부터 전 재산을 물려받은 시기인 해방 후에 벌똥골에서 이장해 왔다. 6.25때 죽은 부모는 저건너라고 부르는 또랑 건너 야산에 임시로 묻었다가 휴전이 되고 이장을 해 온 것이다.
조부모의 산소는 여느 집안의 시조 산소만큼이나 봉분이 크다. 산소 옆에는 4척에서 높이의 와비를 세워서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뼈대가 있는 집안처럼 보인다. 용머리를 한 와비는 생전에 큰 벼슬을 한 사람만 세우는 비석이다. 그런데도 용머리를 한 와비에는 벼슬을 했다는 흔적은 없다. 그냥 손바닥만한 표석에 쓰는 문구처럼 [고 이말식 지묘]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써져 있을 뿐이다.
소나무들이 무성하게 서 있는 산비탈은 산자락을 한 꺼풀 벗겨 낸 것처럼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솔잎이 쌓이기 무섭게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갈퀴로 긁어 가는 까닭이다. 산소에서 자라나는 잔디들도 틈만 나면 갈퀴로 긁어 북데기를 모아 가서 빗질을 한 것처럼 반듯하게 키를 세우고 있다. 산소의 북데기도 남아돌지 않을 지경이니 이병호의 산이 아닌 곳은 골탕이며 산자락의 갈대나 억새도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풋나무가 한줌거리만 되면 여지없이 낫질을 해 버려서 비봉산은 벌겋다 못해 빨간색으로 엎드려있다.
"소나무는 단 한 주도 건드려서는 안되아. 만약 어뜬 놈이든 소나무에 톱질을 하는 놈이 있으믄 그 즉시 쫒아 와서 알려야 햐.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은 당장 동하한테 일러서 그 날로 지서주임이 직접 수갑을 채우러 오라고 할 모냥잉께."
"이 박평래가 모산에서 숨을 쉬는 한 면장어르신 산에서 낫질 하는 놈들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없을팅께 추호도 걱정하지 마셔유."
박평래는 이병호가 틈이 날 때 마다 당부하던 목소리를 떠 올리며 흐뭇한 얼굴로 이병호의 산소들을 바라본다. 비석골 산 주인은 비록 이병호지만 산 구석구석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모산에서 이병호한테 허락을 받지 않고 갈비를 긁어 갈 수 있고, 병이 들어서 누렇게 마른 삭정이를 마음대로 베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신분이라는 자부심이 뿌듯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뒷간을 푸는 일은 이병호 앞에서 장담을 했던 것처럼 앞 들판에 산그늘이 지기 시작할 즈음에 끝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