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수살인'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살인사건 피해 유가족 측과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 측이 법정에서 상영 금지 필요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피해 유가족의 법정 대리인은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김상환 수석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가처분 심문 기일에서 "'암수살인'은 고인이 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상영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대리인은 "이 영화는 실제 2007년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실제 범행 수법과 장소, 시간, 피해 상태 등을 99% 동일하게 재연했다"며 "과연 이 영화가 창작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대목에서 범인과 피해자는 길에서 어깨가 부딪히며 시비가 붙는다. 이어 범인이 흉기로 피해자의 목 등을 찌른 뒤 시신을 방화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대리인은 "쇼박스는 유족들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을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제작 전에 단 한 번도 동의를 구하거나 협의한 일이 없었다"며 "영상이 그대로 송출될 경우 유족들은 되돌릴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리인은 또 영화가 피해자의 '잊힐 권리'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유족들이 더는 환기하지 않도록 하고, 특히 영화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대중이 알게끔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쇼박스 측 대리인은 "우선 영화 제작사가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고 촬영한 점은 변론에 앞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깨가 부딪히면서 '묻지 마 살해'가 벌어지는 테마 구성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소재"라며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창작의 영역이라 유족의 동의를 법적으로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맞섰다.

쇼박스 측은 특히 "이 영화는 범죄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자백을 한 범인과 우직하고 바보스러운 형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법정에서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한 대목을 중심으로 50분가량 영상을 시청했다.

재판부는 영화 개봉일이 다음 달 3일인 만큼 양측에 29일까지 추가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주말 내 영화 전체 분량을 시청하고 관련 법리와 양측 의견서 등을 살펴본 뒤 이르면 다음 달 1일 상영 금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