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 <삽화=류상영 화백>

"당신은 어째 한 마디 말을 하믄 꼭 열 마디로 토를 달게 맹그능겨? 내 말은 아를 낳고, 안 낳고는 사람 뜻대로 되능기 아니란 말이잖여. 작은마님도 그릏지. 머가 부족해서 그 나이에 아를 낳고 싶겄어. 자식이 영 읎는 것도 아니고 딸 섯이 짝아? 그릏다고 대를 이을 자식이 영 읎는 것도 아니잖여."

"승철이가 우째서 작은마님 아들유? 호적에야 아들로 입적이 되었겠지만 엄연히 즈 친어머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멀쩡히 살아 있는데?"

"허허! 이 사람 즈녁을 잘못 처먹었나? 남들은 보리죽도 못 먹어서 피골이 상접한 세월에, 보리죽이라도 제 때 처 먹응께 간덩이가 붰나. 찢어진 거시 입이라고 못하는 말이 읎구먼. 이 푼수 덩어리야, 으째서 승철이가 작은마님 아들이 아니란 말여. 들례는 핏덩이를 작은마님한티 넘겨 준 일 벢에 읎잖여. 핏덩이 똥 쌀 때부텀 이날 이적까지 금이야 옥이야 키운 이는 엄연히 작은 마님이잖여. 옛날 부텀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어. 그 잘난 목구녘에 거미줄 치지 않을라믄 그 놈의 주딩이부텀 조심해야 혀."

"내가 읎는 말을 했슈 이 동리 사람뿐만 아니라 양산이나 학산면 사람들 치고 승철이가 들례 자식 이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워디 있다구."

"이 사람 이거 오랜만에 나 혼자 포식을 했다고 샘이 나는가? 당신 시방 나는 쌀밥 먹고 당신은 보리죽 먹었다고 한번 해 보자능겨? 머여."

"다 늙어 빠져갖고 하긴 멀 한댜."

"맥 빠지게, 자꾸 헛소리 지껄일겨?"

"내가 읎는 말을 한 거는 아니잖유."

"당신 말대로 승철이가 작은마님 친자식이 아니라는 거 알 만한 사람은 죄다 알고 있는 사실여. 하지만 당신이나 나나, 우리 집 식구들은 절대로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된다 이거여. 만약 당신이 모월모일 모시에 승철이가 작은마님 자식이 아니고 들례가 낳은 자식이더라. 하고 떠든 사실이 해룡네 귀에 들어가 봐. 해룡네는 동네방네 떠들 거고 결국에는 면장댁 식구들 귀에 들어 가 봐. 우리 집 식구는 그 날부터 면장댁 근처는 얼씬도 못햐, 이 등신아. 이쯤하믄 내가 시방 먼말을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 들었겄지?"

청산댁이 누워있는 이불 위로 마당에서 희미한 달빛이 쏟아지고 있다. 박평래는 청산댁을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곰방대 부리를 힘껏 빨았다. 기분 좋게 연기를 내 뿜으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풍년초의 맛은 확실하게 그늘에 말린 엽연초와 확실하게 다르다. 엽연초는 담배를 빨아들일 때의 느낌도 시원치 않고, 담배를 피우고 난 후에는 입 안 가득 군침이 고여서 뒷맛이 밋밋하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고 난 후에는 가래침을 시원하게 뱉고 나야 개운하다. 그러나 풍년초는 담배를 빨아들이는 느낌도 순하고, 피우고 난 후에도 입안이 개운해서 좋다.

"허긴, 옛말부터 낳은 정 보다는 기른 정이 우선이라고 하는 말이 있기는 해유. 하지만 그건 당사자들 문제고, 요븐에도 작은마님이 가랑이 사이가 납짝한 걸 나믄 워틱한댜? 꼬막네 말을 빌리자믄 이븐에는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드라도 틀림읎는 아들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점쟁이 말이 백번 다 맞는다고 볼 수도 읎는 노릇이잖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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