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저울 위에 계절을 얹어 달아 보았나. / 눈대중으로 어림한 적은 몇 번일까? / 없는 사람 무겁지 않고 / 있는 사람 가볍지 않게 저울추를 찾는다. / 공짜 눈 넉넉히 받아두고 웃음 결 도톰할 때, / 누가 벗기기 전 우린 알 몸 되어 겨울 무겔 다는 거다./ 필자의 시 ‘겨울 무게’ 전문이다. 연말, 얼굴 들기 부끄럽다. 입만 무성하고 보여주는 건 없는 세상이니 말 천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책임은 실종된 채 권리로 실수를 땜질하는 머리 굴림의 득세다.

12월 달력에서 얼른 내년을 보려한다. 일 년이 아니라 굴곡의 한 시대를 정리하는 떨림 같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조급함인가. 금 수저·흙 수저 아랑곳 않고 달동네를 오르며 연탄을 쌓는 청년, 오그라든 민생에 손사래를 치다가도 내년 기대로 버틴다는 알바생·자영업자들까지 먹고사는 문제의 항변 “일자리 창출한다더니 말라비틀어진 일감”후렴이 뒤통수를 때린다. 고용시장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너무 무거웠다. 심란한 연말, 어쩌나?

필자에겐 버거운 짐에 눌려 살아온 제자들과 나란히 방송화면을 채울 색다른 기다림이 있다. 그러니까 20여년 전, 600여 어린이가 소박한 꿈을 가꾸는 읍 소재지 학교로 옮겼을 때다. 담임반은 이름하여 정신지체 아이들로 채워진 ‘국화반’이었다. 처음 의지와는 달리 두려움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원래 원적반(소속된 학급) 아이들과 적응을 위해 통합교육이 주가 돼야하지만 떠나갈듯 깔깔거려도 맑음을 섞지 못한 채 또래집단에서 흐림으로 밀려났다. 안 되겠다 싶어 ‘국화 노래단’을 창단, 동요부르기와 멜로디언·리코오더·큰북·작은 북·심벌즈에 빠지게 했다. 걱정이 앞섰지만 신나게 몫을 감당하는 모습에서 금빛 울림이 퍼득였다. 구세군 종소리가 한창이던 때 복지원 네 곳을 찾아 어설픈 공연까지 나눴다. 행사를 끝낸 후 얼싸안고 눈물 비치던 감동은 어떤 황홀한 무대보다 값진 추억이다.

전근 발령을 받고 떠나오던 날, “선생님, 부지런히 연습해서 선생님과 TV에 출연할 날 만들래요” 잡은 손이 뜨거워 먼산바라기로 두고 온 아이들 지금쯤 청순함 가득 지닌 젊음으로 두꺼운 일자리 벽을 뚫었을까. 최저 임금, 근로시간 단축, 저녁이 있는 삶과 동떨어져 잃어버린 것에 대해 차별·유린조차 모를 천사들과 어우러져 국화 향 그윽한 스튜디오에서 공연할 섣부른 희망으로 연말이면 늘어진 목청을 다듬는다.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훌훌 털어 버리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옥타브를 올릴수록 불안과 우려가 짙다. ‘눈물이야 속으로 흘리는 것’이라 했으니 그 제자들 기억하나도 빼지 않고 세밑, 설렘의 편지를 쓰며 견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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