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격동의 한 해를 보냈다. 누군가에게는 2018년이 매 순간 감동이고 축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미련과 아쉬움 가득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지, 나의 삶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심참담(故心慘憺)의 심정으로 한 해를 보내고 2019년의 신 새벽을 열었을 것이다.

나의 삶도 아픔과 슬픔이 적지 않았지만 기쁨과 영광이 깃든 한 해였다. 건강을 잃고 직장도 잃었으며 수많은 사람과의 인연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매 순간 상처가 깃들었기에 불면의 밤이 얼마나 질기고 고통스러웠던가. 그렇지만 건강을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었다. 지역을 뛰어넘어 전국을 무대로 활동할 수 있었으니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였다.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지역혁신가로 선정되면서 앙가슴 뛰는 일들도 많았다. 재능기부로 희망얼굴 희망학교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더 많은 이웃을 만나고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으니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니던가.보라. 동트는 산천을, 트림하는 대지를, 노래하는 새들을, 붉게 빛나는 태양을. 자연은 다투지도 서두르지도 욕심 부리지도 방황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이익만을 쫓지도 않고 아쉬움과 미련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갈 뿐이다. 자신이 있어온 곳, 있어야 할 곳에 엄연하게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자연은 서로를 보듬고 배려하며 새 순 돋는 아픔을 인내한다. 칼바람 부는 북풍한설에도,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날에도, 세상을 요동치게 하는 태풍 속에서도, 메마른 땅 갈증나는 가뭄 속에서도, 어둠이 밀려오는 고립무원에서도 자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훌훌 털고 일어선다. 새 날의 노래를 부른다.

자연은 조금씩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 온 몸을 부비며 상처를 딛고 새로운 꿈을 빚는다. 그 성장통을 켜켜이 쌓고 담고 품는다. 흐르는 물은 멈추지 않는다.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소나무 숲에서 잠시 묵상하자. 철갑을 두른 껍질과 솔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고 솔잎 향 가득하다. 소나무의 강건한 삶이 끼쳐오지 않던가. 그것이 그동안 견뎌온 진한 삶이다. 가르마 같은 들길, 도시의 골목길 풍경 속에서도 삶의 향기가 묻어있다. 정중동(靜中動). 자연은 이처럼 조금씩 자신의 삶에 의미를 담는다.

상처가 깃들지 않은 풍경이 어디 있던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상처가 깃들어 있으니 아프다고 구시렁거리지 말자. 그 상처를 딛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자.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부르지 않았으니,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아직 하지 않았으니, 가장 행복한 날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그대여, 더 큰 가슴으로, 더 큰 열정으로, 더 큰 사랑으로 새 날을 맞이하자. 축복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자.

우리는 그날의 벅찬 메시지를 기억하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성난 촛불민심의 마음을 보듬으며 세상에서 가장 값진 나라를 만들고 행복한 사회를 일구겠다는 초심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들리지 않는가. 백성들의 성난 함성을, 촛불보다 더 무서운 마음속의 횃불을, 사위어가는 청춘들의 신음소리를…. 함께 하는 세상, 꿈과 희망의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소망하나니 오라 새 날이여, 붉은 태양처럼 세상을 밝혀라. 아름다움을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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