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 ▲ <삽화=류상영> |
돼지머리와 사골에 붙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쿡쿡 눌러서 다 익었다 싶으면 건져낸다. 돼지머리와 돼지 뼈에 붙은 살을 발라내는 동안 성질 급한 남정네들은 이미 취해 있기 일쑤다. 그 동안 사골국은 염소젖처럼 뽀얗게 변해있다. 거기다 작년 가을 김장때 무청을 새끼로 엮어 말려 만든 시래기를 듬뿍 집어넣는다. 파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다음에 매운 고춧가루와 된장으로 간을 해 놓으면 맛있는 돼짓국이 된다.
교자상에 떡과 과일이며 나물 반찬에 갓 담근 김치 등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동네 아이들도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나타난다. 어른들이 차일 밑에서 돼지국밥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는 동안 아이들은 또랑에 발을 담그고 배가 부르도록 돼지국밥을 먹는다. 그것도 부족해서 절편이며 과일을 손에 손에 쥐고 땀을 줄줄 흘리며 둥구나무거리로 향한다.
국밥에 거나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도도하게 취기가 돌면 장구가 동원되고 꽹과리 소리가 비봉산을 울린다. 장구소리와 꽹과리 소리에 맞춰서 중이적삼을 입은 남정네들과, 무명저고리를 입은 아낙네들은 누가 손을 잡아끌지 않아도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신명을 돋구기도 한다.
여름밤이면 또랑은 동네 목욕탕으로 변한다. 벌똥골 쪽에는 남정네들이 흙먼지로 범벅이 된 땀을 씻어내고, 당골 쪽인 아래쪽에는 아낙네들이 목욕을 하며 초저녁의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5월이라서 한 밤중에 또랑에 사람들이 올 리가 없다. 그런데도 자갈밭에는 언제부터 인지 모닥불이 타고 있다.
"내 평생 개장국에 수육은 어쩌다 한번 씩 맛을 잊어 뻐릴만 하믄 먹어 본 적이 있어. 하지만 개 불괴기는 저승에 계신 우리아부지도 안 잡사 봤을껴."
모닥불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등걸불 위에 삽날 크기의 납작한 돌이 얹어졌다. 돌이 뜨거워 질 무렵이 김춘섭이 내장을 도려낸 개고기를 단도로 썰어서 얹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방 개고기가 익어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오씨가 마른입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읎어서 못 먹지. 불고기가 아니라 회를 못 쳐 먹을까."
모산 구장 황인술이 버드나무를 분질러 만든 젓가락으로 개고기를 뒤적거리다 연기를 피해 고개를 모로 돌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쥐약을 먹고 뒈진 개를 먹어도 괜찮을까."
"아까 개 잡을 때는 부잣집 개라서 살집도 좋다고 침 흘릴 때는 은제고, 괴기 익는 냄새 낭께 처먹지 않아도 배떼지가 부른개비구먼."
윤길동의 집은 골목 안에 있는 집이다. 김춘섭은 면장댁의 불이 꺼진 후에 해질녘에 파묻었던 개를 도로 파내어 가마니에 싸서 지게에 지고 내려오다 윤길동을 불러냈다. 윤길동은 개고기라는 말에 두말도 없이 따라나섰다. 짚불에 개털을 끄스르고 김춘섭이 내장을 도려낼 때 뒷모도를 해주었다. 그랬던 윤길동의 말에 김춘섭이 비아냥거린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