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 ▲ <삽화=류상영> |
황인술이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윤길동에게 따라주며 말했다.
"순배 영감도 부를 걸 그랬나?"
잠자코 앉아 있던 박태수는 동네를 바라본다. 면장댁의 불이 꺼진지는 한참 됐다. 면장댁의 불이 꺼진 동네는 먹칠을 해 놓은 것처럼 불빛 한 점 없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옥천댁도 잠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울렁거린다.
"이빨이 읎어서 맷돌로 갈아주믄 모를까, 개장국도 아닌데 드실 수 있겄어?"
"그 냥반이 이빨 읎다고 괴기 사양하는 거 봤남? 괴기라믄 환장하는 영감이라서 시방이라도 소리를하믄 맨발로 쫓아올걸…… 난 개괴기를 개장국이나 수육으로만 먹는 줄 알았었는데 돌 구이를 해 먹어도 별미네."
황인술은 연기가 자기 쪽으로만 와서 불편했다. 그러나 삽날만한 돌을 가운데 두고 장정 여섯 명이 둘러앉으니까 자리를 옮길 수가 없었다. 김춘섭의 말에 토를 달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고기를 집는다.
"근데, 워티게 독구가 쥐약을 처먹었을까?"
박태수는 옥천댁의 얼굴이 떠올라서 한참 동안 아련한 시선으로 캄캄한 동네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어떤 것이 익었는지 어느 것이 안 익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른데도 다른 사람들은 잘도 집어 먹는다. 대충 눈짐작으로 익은 것처럼 보이는 고기를 입안에 넣었다.
"부자가 저 배부른지만 알지, 남 배곯는 사정 이해할라고 하겄어? 독구도 그 짝이 났는지도 모르지. 그 어른은 우리 같은 놈도 인간으로 안 보는데 개새끼라고 대우를 해 주겄어?"
윤길동은 쥐약을 먹고 죽은 쥐라서 찝찔하기는 했지만 먹을수록 맛이 있었다. 이런 횡재가 있을 줄 알았다면 저녁을 굶고 기다릴 걸이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고깃점을 주워 먹는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는 말이 책에만 나오는 말이 아녀. 솔직히, 이복만이 모산 땅 중에 노란자만 다 차지할 줄 누가 알았슈. 후지모토의 마름질을 하다 쫓겨나니 마니 했었는데."
황인술이 오씨가 들으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방 전에 이병기의 아버지인 이복만은 일인 후지모토의 마름을 했었다. 약아 빠지기로는 이병기 못지않은 이복만은 후지모토 모르게 도지로 받은 쌀가마니를 심심치 않게 착복했다. 후지모토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복만은 쫓아내려고 했었다. 만약 이복만이 쫓겨났다면 오씨가 마름 자리를 차지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엎지는 물을 바가지에 주서 담을 수 있남? 다 지나간 일 들춰서 뭐햐. 어서 술들이나 마셔."
오씨는 황인술의 말이 씁쓰름하게 들려와서 의식적으로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신다.
"구장님 말이 틀린 말은 아녀유. 그때 우리가 및 살이었더라?"
김춘섭이 박태수에게 물었다.
"은제를 말하능겨?"
고기를 뒤적거리고 있던 박태수가 별 관심이 없다는 얼굴로 반문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