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 <삽화=류상영>

"아, 해방이 되든 전 해 말여."

"해방이 은제 됐드라? 오랜만에 개괴기를 먹응께 창새기가 환장을 했는지 해방이 은제 됐는지 생각도 안나는구먼."

김춘섭이 고기를 썰어 돌판 위에 얹으며 말했다.

"단기 사천이백칠십팔 년에 해방이 됐잖여. 올해가 사천이백팔십구 년 잉께 해방 된지 딱 십일 년 됐구먼. 그 전 해믄 십이 년전 야기잖여. 우리가 스물니 살 때 일이구먼. 그라고 봉께 우리 상규낳고 한 해 뒷일이니께 딱 맞구먼. 시방 상규가 열시 살이거든."

"그때가 일본 놈 말로는 소화 십 사년 이고, 단기로는 사천이백칠십칠 년이여."

오씨가 우물우물 씹던 고기를 삼키고 태수의 말을 받았다.

"오씨 냥반은 다 잊어뻐렸다고 하드니 안직도 가슴에 맺힌 거시 있는 모양이구먼."

황인술이 연기 때문에 일어섰다가 다시 돌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허! 아까 다 잊어 뻐렸다고 했잖여. 시방 그 때 일을 들춰서 떡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괴기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미쳤다고 맘에 두고 있어?"

"말은 그릏지만 절대로 못 잊을껴. 암! 나라도 못 잊을껴."

"그 말은 구장님 말이 맞아유. 이복만이 후지모토를 속여서 도조를 근 십년 동안 백가마니도 넘게 빼먹었다고 했잖유. 그걸 후지모토가 눈치 챘다잖유.학산면사무소에서 임시직원으로 근무를 하던 면장님이 알고……"

"그 때는 면장님이 아니고 면서기였담유?"

김춘섭이 개고기를 맛있게 먹으며 끼어들었다.

"그려 그 때는 면장이 아녔어. 좌우지간 면장님이 산업계장이든 니모돈가 너모돈가 하는 사람을 델꼬 와설랑 손이 발이 되도록 빌믄서 사정을 했다잖유. 이건 분명 음모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내가 알고 있는 부친은 남에 것이라고는 개똥도 주서오지 않는 승격이다. 정 아부지를 못 믿으믄 내년 가실에 직접 도조를 챙겨봐라. 만약 한 가마니라도 차이가 난다믄 자결을 하겄다. 라고 말여. 그랑께 후지모토가 산업계장인 니모도의 체민도 있고 해서 한 해만 더 두고 보자고 약속을 했으믄서도, 내심으로는 오씨 냥반을 마름감으로 점 찍어 두었다고 했잖유. 그 때만 해도 우리 동리서 소학교 물이라도 먹은 사람은 오씨 냥반 벢에 읎을 떼니께."

황인술은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연기를 손으로 내저으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그런 걸 보믄 면장님은 재주도 좋아. 조선 사람이믄서 일본 사람인 산업계장을 제 편으로 만들어서 후지모토를 설득한 걸 보믄 보통 재주는 아녀."

황인술 쪽으로 흘러가던 연기가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윤길동 쪽으로 흘러갔다. 윤길동이 황인술과 교대라도 하듯 연기를 피해서 일어났다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재주가 좋은 기 아녀. 세상을 잘만나서 임시직원을 하다 해방이 되자마자 산업계장을 하드니, 이승만이 정권을 잡응께 부면장도 건너뛰고 단박에 면장이 된거지 머. 솔직히 우리 찌리 있응께 하는 말이지만 그 아부지에 그 아들이라고 면장님도 일본놈들이 똥구녘이라도 핥으라믄 핥을 위인들이잖여. 안 그려?"

황인술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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