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물감을 엎지른 듯 뿜던 함성은 멎고 / 낙엽 몇 잎 끼리 뒹굴어 꾀죄죄할 때, /질박한 설움 살아올라 / 뭉클하게 육박해 온 애환 / 절제된 단어로 쏟아 인연의 업보 숨긴 몸짓하며 / 휑한 나뭇가지 비껴 / 이사하는 철새가 된다. / 뒷짐 진 바람 따라 / 귀 익은 노래 / 한 옥타브 올려 / 겨울을 지키고 있다./ 필자의 시 ‘겨울 중턱에서’ 전문이다.

눈을 밟은 기억도 없는데 어느 새 입춘도 지났다. 설을 쇠고 나니 오히려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에 보일러를 올린다. 이맘 때 안성맞춤은 독서다. 숙독하여 음식처럼 맛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계절이다. 읽을거리조차 굶주렸던 필자의 겨울방학 때, 발기발기 헤진 ‘심청전’이나 ‘콩쥐팥쥐’ 한두 권 동네에 들어오면 사랑방 가득 모인 사람들 눈빛은 밤늦도록 초롱초롱했다. 시대가 변해 책의 홍수를 오히려 귀찮아하고 도서관을 책 수장고쯤으로 생각하니 풍요 속 독서 가난뱅이 신세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의 완성은 독서’라고 했다. 씁쓸하지만 책읽기 으뜸으로 일본인을 꼽는다. 그들의 독서습관은 국민 의식 형성과 밀접하다. 유독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 붙박이에 시끌벅적한 현실, 이제 안 맞는 얘기다. 독서는 원래 계절과 연령을 건너 뛴 평생 양식인데 우리나라 평균 독서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다행스러운 건, 청주시의 경우 ‘책은 사람이요 곧 사람의 일생이며 또한 미래다’란 주제로 시민 동력을 성장시키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책 꾸러미 선물과 함께 독서 문화서비스를 시작한다. 11개 공공도서관 및 120여 지역도서관의 생애주기별 프로그램 운영은 ‘평생 독서’ 촉진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사업은 12회 째 명품 사례여서 다른 지자체의 벤치마킹 0순위다. 그 사업도 머지않아 가정·가족의 소중함이 전제된 ‘1가정 1책’으로 방향을 생각할 때다. 쾌속 질주하는 변화와 조화로운 인생 환기(換氣)에 독서를 추월할 마중물이 있을까?

네 살 때부터 토·일요일을 거의 엄마 아빠를 졸라 동네 도서실이나 시립도서관에 드나들던 초등학교 6학년짜리 하루 독서량이 지금은 무려 60권 정도였다. 참으로 낱말 하나, 문장 부호에 담긴 아름다운세상 속으로 빠진 게 분명하다. 독서란 사람을 재탄생시키는 가장 확실한 삶의 밑천이다. 특별한 방법이나 사교육도 필요 없다. 학습의 길을 닦는 최고 공부다.

출발점은 놀이여야 한다. 독서 낭패 요인은 대부분 지식 축적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읽다가 그만둘 책도 꽤 많다. 비싼 돈 주고 샀다고 해서 억지로 끝까지 읽어야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몇 쪽 짜리 얄팍한 책부터 서서히 단계를 높여 싫증을 잊게 하라. 습관처럼 책과 오물오물하다 보면 다시 들춰야 할 세상이 널려 있다. 독서를 한 계절의 전유물로만 밀어붙이지 말라. 가을은 축제·운동회·체험학습·여행 등 아이 어른 모두 가장 바쁜 계절이니 읽고 싶어도 요란한 독서행사 오류다. 외통수였던 등화가친(燈火可親),이제 ‘겨울독서’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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