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1장 달빛 고요한 밤에
| ▲ <삽화=류상영 화백> |
"해방 전이야 굉장했쥬. 솔직히 후지모토 앞잽이를 함서 우리들한티 을매나 지독하게 굴었슈. 바늘로 찔러서 피 한방울 안 나오는 건 냥반이고, 칼만 안들었지 완전히 날강도였잖유. 오죽하믄 모산 이복만이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소문이 났을까."
"못할 짓 많이 했지. 나락이 영글 때 답품 나오믄 꼭 너무 잘 익어서 나락 알이 대추처럼 탱글탱글한 걸로만 골라서 도조를 계산했었잖여. 저울질은 돼지장사 들이 울고 갈 정도잖여. 집에서 분명히 팔십 키로 한 가마를 담아 갔고 같는 데도 이복만이가 저울질을 하믄 꼭 삼사키로 씩 모자랑께 사람 환장하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그릏다고 칼자루 쥔 쪽은 저짝이라서 저울 눈금을 보자고 할 수 있나, 내 저울을 들고 가서 달아 보자고 할 수 있나. 도지를 뺏길가봐 꾹꾹 눌러 참고 있자믄 과부하고 공씹하고 비녀 빼가는 놈도 너 보다는 났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래니께."
김춘섭의 말에 이어서 황인술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얼굴로 말했다.
"목구녘이 포도청이라고 시방은 암것도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참말로 못할 짓 많이 했쥬. 오죽하믄 이복만 밑에서 소작을 하느니 만주가서 굶어죽는 다는 말이 나왔겠슈."
박태수가 불이 붙은 나뭇가지로 담뱃불을 붙이고 나서 말했다.
"실지로 밤보따리 싸서 만주로 전라도로 야반도주 한 집에 및 집 되잖여. 날망에 사는 종식이랑, 춘셉이 뒷집에 살던 뚝불이 아부지, 면장댁 아랫집에 살던 구만이가 순전히 이복만 등쌀을 못 이겨서 야반도주 했잖여. 그런 거 보믄 육이오 때 잘 죽었어. 만약 시방까지 살았다믄 쥐약 처먹고 뒈진 개새끼도 그냥 파묻지 않고 다믄 얼매라도 돈을 받고 팔았을껴."
"만복이 아저씨 아줌마를 건들였다는 소문도 있었잖유."
김춘섭이 길게 트림을 하고 나서 오씨에게 물었다.
"워쩌믄 만복이는 그 소문 땜시 여길 떴을껴. 그 소문 때문에 만복이 처가 지덜 디딜방앗간에서 목을 맨 걸 만복이 아들이 발견했잖여. 쪼끔만 늦었어도 죽었을껴. 그런 판국이니 그 집구석에 살 수 있었겄어? 그 이튿날 새벽에 여길 뜨고 말았지. 그러고도 자식놈들이 죄다 잘 되는 걸 보믄 하느님이라는 것이 읎는 모냥여. 하느님이 있다믄 그 자손들을 벌을 줘야지 재물을 주겄어?"
오씨는 고기를 우물거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또랑가에서 보는 밤하늘은 동네에서 보는 밤하늘과 다르다. 바람이라도 불믄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별들이 자갈밭의 운모조각처럼 선명하게 반짝인다.
"옛말에 걸어지 삼대 안가고 부자 삼대 못간다고 했잖유. 그 징조로 부면장님은 아들이 읎어서 씨받이를 읃었잖아유. 씨받이도 씨받이 나름이지. 그 밭에 그 씨라고, 일본사람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다고 아들까지 낳은 여자하고 사이에 낳은 자식이 뭐가 잘 되겄슈."
김춘섭은 돌판 위에 고기를 듬뿍 울려 놓는다. 불이 붙어 있는 나뭇가지가 쑤석거려서 잘 타게 만들어 놓은 것도 부족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암만. 잘 될 리가 읎겄지. 하지만 내 생전에는 면장댁 망하는 꼴 못 볼껴. 내 나이 쉰다섯 인데, 부면장 나이는 인제 제우 서른여덟 살이잖여."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