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용 소장 징역 15년 선고

建軍(건군) 以來(이래) 最大(최대) 規模(규모)의 수회 및 軍紀(군기) 유해 사건에 관련, 그동안 拘束搜査(구속조사)를 받아오던 () 首都警備司令官(수도경비사령관) ()필용 少將(소장) 10()陸軍高級將校(육군고급장교)들이 28() 上午(상오) 陸軍本部(육군본부) 普通軍法會議(보통군법회의)에서 최고 징역 15() 최하 징역 1까지의 실형을 宣告(선고) 받았다.

陸軍 普通軍法會議(재판장·이민우 中將) 審判官(재판관) ()少將 조문환 少將 方()경원 少將 法務士(법무사) ()진우 大領(대령) 관여검찰관 인수 대위는 이날 上午 9() 필용 소장 등 3將星(장성)을 포함한 關聯(관련) 被告(피고) 10명에 대한 판결공판을 열고 피고인 전원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수회) 軍刑法上(군형법상)의 직무유기 군무 이탈 및 비호 經濟安定(경제안정)成長(성장)한 긴급명령위반죄 등을 적용, 尹 少將에게 징역15벌금 2천만원 추징금 590만원 전 0사단 副師團長(부사단장) 손영길 准將(준장)에게 징역15벌금 2千萬(천만)前 陸士(육사)생도대장 ()성배 准將에게 징역 7各各(각각) 선고했다.

普通軍法會議에는 또 前 第()3CID대장 지성한 대령에게 懲役(징역) 10追徵金(추징금) 827천원 前 陸本進級人事室(육본진급인사처) 신재기 대령에게 懲役5年 追徵金 771천원 前 陸本課長(육본과장) ()익현 대령에게 懲役2年 前 陸士敎官(육사교관) 유갑수 중령에게 懲役1CID요원 송석근 소령에게 징역10추징금 245만원 CID군취반장 이정표 대위에게 징역2년 추징금 86만원 CID군취반 요원 조희곤 준위에게 징역2년 추징금 55만원을 各各 선고했다.

이날 裁判部(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모든 부조리와 비능률적 要素(요소)를 말끔히 청결하기 위한 10維新(유신)의 대하 속에서 指導層(지도층)에 있는 被告人(피고인)들이 軍內部(군내부)에 맹종적으로 추종 아부하는 장교들을 규합하여 사조직을 결성하고 의 명맥인 지휘계통을 문란케 하여 軍戰鬪力(군전투력)을 좀먹게 한 것은 反軍(반군)적 죄악이며 의 배경을 참칭하여 財界(재계) 등 민간 분야에까지 공갈협박의 손을 뻗어 치부와 엽색행각에 치달음으로써 社會(사회) 정화까지도 저해한 죄질은 창군 이래 유례없는 범죄라고 지적했다. (하략) <8671·1973429일자 1>

 

50년 전 대한민국을 뒤엎어 버렸던 윤필용 사건은 아주 작은 설화(舌禍)’에서 비롯됐다.

1973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 소장은 이후락에게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십니다. 김춘추도 당나라에 갔다 와서 결국 신라의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라고 한 말이 단초가 됐다.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이 말은 결국 박정희의 귀에 들어갔고, 윤 사령관과 그를 따르던 장교들은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처벌됐다.

이 사건은 하나회가 세간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이기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1973년 그가 지원하던 전두환, 손영길, 김복동, 최성택 등 하나회 핵심이던 육사 11기생들이 모두 장군으로 진급하면서 윤필용은 하나회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정희는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2인자로 부상한다는 것은 그 순간 그는 박정희의 표적이 돼 제거대상 1호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2인자로 회자됐던 김종필 역시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박정희 체제 당시 청와대에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김재규 보안사령관 같은 인물들을 축으로 하는 권세들이 존재했다.

김재규의 라이벌이었던 육군방첩대장 윤필용은 19655월 원충연 쿠데타 모의 적발과 19681·21 사태 때 간첩을 잡는 공을 세워 수경사령관으로 진급하면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특히 팽팽하게 파벌전이 진행되던 와중에 자존심이 매우 강했던 육사 2기 김재규가 승승장구하던 육사 8기 후배 윤필용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사건까지 터지면서 군부 내에서 윤필용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인 것을, 박정희는 교묘하게 측근들을 적당히 경쟁시키고 서로 견제하게 하면서 권력을 관리했고, 누구도 2인자가 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윤필용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2년간 투옥된 뒤 풀려났다.

이후 육사 출신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는 1979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수장격이었던 전두환은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김영삼 정부 때 조직이 와해됐다.

하나회가 중심을 거머쥔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이후 윤필용은 한국도로공사 사장, 한국담배인삼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10724일 사망했다.

눈길이 가는 사실 하나, 이 당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제3CID대장 지성한 대령은 배우 심은하의 시아버지이다./김명기 편집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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