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노래하는 경찰관

[충청일보 신정훈기자]동네마다 유명한 사람은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을 '스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때때로 스타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다.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화려한 스타는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영역에서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한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지만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우리 동네 스타'를 소개한다.

 

[에필로그]개구쟁이 소년, 음악에 미치다

▲ 20대 시절의 송응호 경사(왼쪽)

어릴 적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개구쟁이 소년. 고등학교 학창시절 친구가 '띵땅' 거리는 소리에 흠뻑 취했다. 또래 이성 친구를 보고 쿵쾅거리던 심장이 기타 소리를 듣고 마구 뛰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지독하게 연습했다. 
 

20대의 송 경사는 성당 성가대부터 전국노래자랑 출연, 인디밴드 활동까지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면서 청춘의 열정을 음악과 함께 했다. 학교폭력전담 업무를 맡게 되면서 인디 밴드 활동 당시 알게 됐던 유명 가수 이형석씨에게 3개월 간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다. 이씨는 김희선 주연의 SBS인기드라마 토마토의 주제가 '내게 온 사랑'을 부른 주인공이다.


"남들은 이 나이에 왜 노래를 배우고 시간을 허비하느냐고도 한다. 하지만 내 인생이 즐겁고 그와 함께 내 노래를 듣는 이들이 즐거워졌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부른다"고 송 경사는 말한다.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거친 송 경사는 프로급 노래 실력을 갖추고 사회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학교폭력, 경로당 노인잔치, 방송출연까지 그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송 경사는 "동네 스타는 부르면 어디든 달려간다. 돈은 전혀 받지 않으니 걱정들 마시라"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 뿐, 내 노래에 박수치고 즐거워만 해 달라"고 말했다.

▲ 충북 청주지역에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 정문 앞. 이른 아침부터 우스꽝스러운 두건을 뒤집어 쓴 채 한 쪽 어깨에는 기타를 메고 경찰 정복을 입은 한 남성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다. 충북지방경찰청 청주흥덕경찰서 봉명지구대에서 순찰요원으로 근무하는 송응호 경사다.

충북 청주지역에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 정문 앞. 이른 아침부터 우스꽝스러운 두건을 뒤집어 쓴 채 한 쪽 어깨에는 기타를 메고 경찰 정복을 입은 한 남성이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여고생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윽고 검정색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어 '오빠', '오빠'하는 환호성이 연신 터져 나왔다. 플래쉬도 쉴새없이 터졌다. 여고를 찾은 이 남성의 정체는. 그는 바로 충북지방경찰청 청주흥덕경찰서 봉명지구대에서 순찰요원으로 근무하는 송응호 경사(42)다. 그는 학교 폭력을 노래로 치유하고 예방하는 '노래하는 경찰관'으로 더 유명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근육질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벗어진 머리. 그는 여느 경찰관과 다름없이 푸근한 인상의 동네 경찰 아저씨다.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다
송 경사의 별명은 '노래하는 경찰관'이다. 6년 전 붙여진 이 별명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난 2009년 학교폭력으로 떠들썩하던 때 학교폭력예방 전담경찰관의 임무를 맡았다. 학교폭력예방 강의를 다녔지만 어린 학생들의 얼굴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 시절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개구쟁이 송 경사는 '나라도 이런 강의 절대 안 듣는다'라며 색다른 접근법을 연구했다. 골머리를 앓던 그가 무릎을 딱 쳤다. "어린 시절 꿈꾸던 가수로 변신해 학생들과 호흡해보자." 그 때부터 대중가요를 개사해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호응은 그야말로 만점이었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순간이었다.  
 

◇보컬트레이닝 받는 음악인
송 경사의 이력은 화려하다. 의경 복무 시절 전국노래자랑 출연과 언더그라운드 밴드 생활까지. 최근에는 KBS토요아침마당에 출연해 그의 독특한 음악 인생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 동안 방송 출연만도 수회. 공연 횟수만 200회가 넘을 정도다. 3개월 동안 퇴근 후 시간을 내서 유명 가수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인기가요를, 경로당에서는 트로트를 멋들어지게 소화해 내는 그는 가수다. 수준급 노래 실력 덕분에 지역에서도 출연 요청이 쇄도한다.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재치와 유머 넘치는 경찰 아저씨 노래는 그야말로 명품"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여고생 오빠 부대 "꺄악∼"
학교폭력예방 강의를 나선 지 6년. 그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다. 바로 '팬'이다. 여고생들의 풋풋한 고민상담을 들어준 '오빠 경찰관'. 여고생들은 그를 노래하는 멋쟁이 오빠로 부른다. 남자 친구와의 성상담부터 학교폭력까지 그는 경찰이기 이전에 '동네 오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길가는 여학생들이 '오빠'하며 외치고 달려든 적도 있다. 짓꿎은 장난인 것을 알지만 기분은 째진다. 아이들에게 기쁨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공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빠가 자랑스러운 딸들
"동네 언니들이 아빠 언제 또 오냐며 학교에 다시 와서 노래 불러 달래요." 그는 딸들에게도 공인 받은 스타다. 학원에서, 학교에서 송 경사의 딸을 알아본 이들은 그가 아닌 딸들에게 은근슬쩍 기분 좋은 공연 요청 로비를 하곤 한다. 송 경사는 "언제인가 딸아이가 '아빠 우리 학원 선생님이 아빠 노래하는 경찰관이냐고 물으시더니 학원에서도 공연해 달라고 부탁했어요'라고 말하더라"며 "기분 좋죠. 딸 아이가 은근 어깨 으쓱하던데요"라고 아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가끔 딴따라냐, 경찰이냐고 비웃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도 있다"며 "나를 알아봐주는 학생들이 나를 생각하며 나쁜 짓을 안 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어 "학생들이 내 노래를 듣고 맘껏 웃고 즐기며 마음이 치유된다면 어디서나 노래를 부를 준비가 돼 있다"며 "평생 내 재능을 필요한 곳에 기부하며 사는 것이 소박한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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