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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스타]시골마을에 웃음꽃 활짝 폈네연꽃으로 부농의 꿈 이룬 이상선씨
김규철 기자  |  qc25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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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8  18: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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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선씨(가운데)가 연꽃마을을 방문한 사단법인 한국 농업경영인회 회장단에게 칼국수 만드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05년 청주 강내면에 연꽃마을 조성 앞장
연잎밥 등 주민소득 연결 아이템 개발 성과
연간 5000명 방문 전국적 관광명소 만들어
충북 첫 전국 팜스테이마을 사무총장 임명

 

[충청일보 김규철기자]어린 시절 어려운 시골 농촌 환경에서 자라 중학교를 겨우 마친 소년은 농사를 짓는 것보다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녹록하지 않은 세상을 경험한 소년은 청년이 돼서 고향으로 돌아왔고 아버지를 따라 다시 농사를 짓게 됐다.
 

매년 같은 일정을 반복하는 농사를 지으면서 큰 꿈을 갖지 못했던 청년은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판단을 했고 평범한 벼농사를 짓던 마을에서 살면서 어떻게 하면 만년 시골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을까를 놓고 고심하다가 이장을 맡게 되면서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벼를 심던 논에 연(蓮)을 심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연꽃마을이다.
 

강내 연꽃마을 조성의 주역인 이상선 씨(54)는 지난 2004년 연꽃을 심어 소득을 올리는 것이 벼농사를 짓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 동네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 씨가 연꽃마을을 만들자는 주장에 일부 주민들은 반대했지만, 이 씨의 말을 믿은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연꽃마을 조성이 시작됐고 지난 2005년 조성된 연꽃마을에 도시민들이 찾아와 연꽃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연꽃 향기가 서서히 퍼져나가듯이 강내 연꽃마을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도시 주부들이 찾아 왔을 때 보여드릴 것이 별로 없어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라는 이 씨는 이후 황토방을 늘이고 연꽃을 재배하는 면적을 넓히는 등 더 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을까?
 

강내 연꽃마을에 관한 뉴스가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면서 도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이곳을 찾은 도시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마을의 명성이 퍼져나가 이제는 시민과 학생 등 연간 500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충북에서 가장 앞장서는 연꽃마을로 자리매김했다.
 

이 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연을 이용한 제품을 만들어 소득과 연결시키는 구상을 했고 연잎밥, 연꽃 지지미 등을 개발해 차별화된 밥상을 제공할 수 있는 마을로 가꾸게 됐다.
 

또한 연잎한과공장 설립, 체험객 유치 등 쉴 틈 없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강내 연꽃마을의 소득은 벼를 심었을 때보다 8배까지 수직상승했으며 이 마을의 토지 매매가도 몇 십만 원에서 100만 원이 넘어가는 등 주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연꽃마을은 이제 '강내면 궁현리'라는 공식 지명보다 '강내 연꽃마을'로 통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처럼 꾸준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이 씨도 마을 이장에서 사단법인 한국농업경영인회 청원군연합회장(2007년~2010년), 한농연 충북도연합회 감사(2012년~2013년), 팜스테이마을 대표(2005년~), 충북팜스테이마을협의회 총무(2007년~2010년)를 역임했으며 이어 대표(2010~2014년)를 맡는 등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이 씨는 내년에는 충북 최초로 전국 팜스테이마을 사무총장을 맡게 돼 충북도내 팜스테이마을 홍보에 앞장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씨에 이어 연꽃마을을 이끌고 있는 김보성 연꽃마을 대표(45)는 "이 회장님은 연꽃마을의 선두주자이자 동네에서 계속해서 어드바이스 많이 해주시고 없어서는 안 될 정신적 지주"라고 극찬했다.
 

이렇게 연을 가꾸면서 개인적 발전은 물론 마을의 성장을 이끌어온 이 씨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강내라이온스클럽 회장을 맡아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앞장섰는가 하면, 강내면에 생활안전협의회를 창설해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한 활동도 펼치는 등 지역 지킴이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지역주민들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남에게 받는 것보다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에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그리는  미래

 

△연꽃마을을 조성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처음에는 장미를 심을 계획도 세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있고 사진촬영 등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에 연을 심기로 했다.
 

△마을을 이끌어온 소신은.
 

-도시민들이 연꽃마을에 와서 제품을 사도 그들의 자녀들에게 친환경 먹거리를 줘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마을을 이끌어 왔다.
 

도시 소비자들이 이곳에 와서 직접 주말농장을 가꾸고 연꽃마을 주민들이 농사짓는 것을 보면서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연꽃마을을 방문한 도시민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도 미비한 점이 있다. 과거에 비해 도시에 인접해 있고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어 때로 아쉽기도 하지만 마을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주민들이 많이 따라주셨지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교육을 실시해 마을 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다.

 

   
▲ 강내 연꽃마을을 이룬 주역인 이상선씨와 부인 이영순씨(왼쪽). 이 씨는 아내의 내조 덕분에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족을 향한  마음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한다는 평을 받기는 쉽지 않다.
 

이 씨도 연꽃마을을 부농으로 만드는데는 주민들에게 100점을 받고 있지만 부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 씨는 "집에는 신경 안쓰고 돈만 갖다 썼다. 마이너스통장을 갖다주면 불만도 많았다"며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 씨는 "최근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한꺼번에 빚을 갚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내 이영순 씨(50)는 "밖으로 많이 돌아다녀 힘들었고 아내로서는 큰 점수를 주지 않았지만 이제와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는 나름대로 좋은 것 같다. 자녀들을 키우는데도 처음에는 아이들도 부정적이었으나 이제는 아빠 편을 많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남편에 대한 내조의 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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