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윤상섭 경위
노인 범죄 잇따르자 각설이 분장 범죄예방홍보
이제 어엿한 슈퍼스타… 행사장 감초 역할 톡톡

▲ ▲포돌이 품바로 인기를 끌고 있는 충북지방경찰청 윤상섭 경위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1동 진재게이트볼장 개장식에서 신명나는 음악에 맞춰 품바공연을 하고 있다.

[충청일보 신정훈기자]"어머니,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덕지덕지 누더기로 기우고 갈기갈기 찢어진 옷, 짝도 맞지 않은 고무신, 우스꽝스럽게 연지곤지를 바른 거지 행색 남성이 작은 묘 앞에서 울부짖는다.


 이내 구슬픈 노래를 목청껏 부르더니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짙은 분장 속 주인공은 충북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소속 윤상섭 경위(53).


 지역 행사장에서 만난 윤 경위는 경찰이 아닌 품바 각설이였다. 15분 간 이끌어 낸 그의 공연에는 인생사(史)가 숨어있다. 희노애락(喜怒愛樂)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어르신들이 그의 공연에 열광하는 이유다.


 머릿발에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어르신들은 웃다가 때론 눈물을 흘리기 하고, 품바각설이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차 보기도 한다.


 어르신들은 바지춤에서 주섬주섬 꺼낸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을 찌그러진 깡통 속에 집어 던진다. 구겨진 지폐만큼 주름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준 품바 각설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어느새 품바 경찰관의 깡통에는 천원짜리가 수북하다.


 "어르신들에게는 귀한 용돈이죠. 이것을 제가 허투루 쓸 수 있나요. 모두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기부합니다."


 지난 2008년 노인을 대상으로 전화사기, 떴다방 사기가 극성을 부리자 노인범죄예방을 위해 윤 경위는 전단지를 들고 어르신들에게 홍보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구겨지는 전단지. 제복 입은 경찰관이 다가오자 "재수 없이 왜 순사가 오고 지랄이여"라며 욕먹기도 수차례.


 평소 품바에 관심 많던 윤 경위는 어르신들의 인생사를 품은 품바공연으로 노인대상 범죄예방홍보활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희노애락을 해학으로 풀어내며 외로운 노년을 위로하고 범죄홍보활동까지 벌이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랬던 윤 경위가 이젠 어엿한 동네스타 대접을 받는다.

누더기 옷만 입으면 어르신들에게 '조용필'보다 더한 인기를 누린다. 연신 터지는 플래시, 꼭 껴안고 사진 찍어달라는 요청 쇄도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실감한다. 그는 자신을 찾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엄니"라고 외치며 어르신들을 찾아 나선다. 그는 그렇게 어르신들의 슈퍼스타, 품바 경찰관이 됐다.

 
고속도로 안전 지키는 경찰관

 편도 387km의 긴 구간. 평균 110km의 속도의 차량이 내달리는 고속도로. 중부1·2고속도로 등의  고속도로 안전운전을 책임지는 충북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10지구대가 윤 경위의 근무지다.


 덕지덕지 기운 품바 옷 속에 감춰진 그의 또 다른 사명이다.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이 도사리는 근무 여건으로 좁은 순찰차에서 하루 종일 대기하는 10지구대 경찰관들. 고장난 차량을 고쳐주기도 하고, 교통사고 처리에 범인 추격까지.


 그들은 고속도로 '맥가이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품바 옷을 벗고 경찰로 돌아온 윤 경위는 이곳에서 경찰관으로 또 다른 봉사를 실천한다. 그의 동료들은 "항상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에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서 "경찰과 봉사자로써 항상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이다"고 칭찬했다.


 그는 "경찰관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이라며 "모든 경찰관들은 국민에 봉사하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윤상섭 경위가 품바공연을 하기 전 각설이 분장을 하고 있다. /권보람기자

각설이로 변신 완료

 50대 중년 남성이 투박한 손으로 여성 색조화장품을 꺼낸다. 두꺼운 화장에 빨간 연지곤지를 볼에 찍는다.


 예뻐지려 화장하나 싶더니 이내 하얀 색조화장품으로 우스꽝스러운 콧물을 만들어 낸다. 화장이 아니라 분장이다.


 검정 색조 화장품은 길게 늘어진 눈썹과 오서방의 점을 담당했다. 작은 거울에 큼지막한 자신의 얼굴을 비추기 위해 입술을 오물조물, 예술의 혼을 담은 그의 손끝에서 품바각설이가 탄생했다.


 '영구' 같기도 하고 '호섭이' 같기도 한 모습, 공연 시작 전 주변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씨(氏), 짝짝이 고무신씨, 찌그러진 깡통씨, 저마다 사연 안은 소중한 소품(?)들도 준비완료. 포돌이 품바는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며 수년을 함께해왔다.


 허리춤에 매달린 냄비씨를 연신 흔들어 대며 품바는 어르신들을 만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사랑하는 가족에 띄우는 편지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못난 신랑을 위해 평생 불평 없이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기죽지 말고 늠름한 서방님이 되라고 온갖 정성을 쏟았던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이구료.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


 근무가 없는 날에는 봉사만 다니는 아빠를 만나 다른 가족처럼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도 못하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못난이 품바는 당신과 우리 가족의 응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정말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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