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아이·평범한 주부도 누구나 시인"

▲ 시인 증재록

[음성=충청일보 김요식기자] 7살짜리 코흘리개들부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나이든 노인들까지 글을 배우고 시를 공부해 시집을 내고 이들의 글을 엮어 문학집을 내 주는 시인이 있다.
 

음성지역 시인 음성에 문학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불리는 정도로 시와 문학에 인생을 받치고 살아가고 있는 화제의 인물은 시인 증재록(70) 씨이다.
 

이처럼 지역에서도 글을 쓰고 책을 펴낸다는 것이 일반화됐지만 30년 전인 80년대만 해도 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런 동토에 씨앗을 심고 잎을 띄워 꽃을 피우도록 마중물 역할을 한 장본인이 있다.
 

음성읍이 고향인 증 시인으로 나이테는 늘어가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커져만 가고 있다.
 

그는 전직 경찰관이다.
 

행정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하다 뒤늦게 경찰 조직에 입문해 26년간 몸담았다.
 

경찰로 근무할 당시 사건접수 도장이 근무지마다 달라 도장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불편함을 해소 하고자 전국적으로 도장을 통일시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80~90년대만 해도 '상을 준다고 해도 경찰서는 가지 마라.'라던 시절이다.
 

그는 경찰서 광장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고자 노력했다.
 

55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전국 최초로 경찰서 광장을 개방해 음악회를 열었으며 2001년에는 생활이 어려운 동거부부를 위해 야외 결혼식도 치렀다.
 

그는 무엇보다 경찰행정에 문화와 예술을 접목시켜 실적보다 예방에 힘을 쏟았다.
 

'도둑놈이나 잡지'라는 주변의 핀잔에도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는 경찰은 물처럼 아무 용기에나 담길 수 있도록 유연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음성경찰서 현관 입구 바닥에 물 수자 3개를 새겨 넣었다.
 

또 직원들의 글을 모아 도롱이(볏짚으로 만든 비옷)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경찰서에서 미술 전시회를 연 것도 그의 생각에서 축발했다.
 

증 시인은 "범죄는 악의 심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은 곧 악한 마음을 교화시키는 것"이라며 "문학과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선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 증재록 시인이 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동토에 문학을 심다
 


동아대 토목과를 졸업한 증 시인은 전공과는 사뭇 다른 문학세계에 발을 디뎌 1968년 시문시극 등 각종 문예지에서 활동하며 문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아. 음성! 당신을 사랑합니다', '똥', '땅', '땡' 등의 시집에서 독특한 어법으로 자신의 속살을 보여줬다.
 

증 시인은 동호인 문학지인 음성문화, 음성문학과 도롱이, 글갈골 등을 편집·집필했으며 광복 45주년 기념 전야제, 음성군 100주년 기념 개여울목 잔치 등 각종 행사의 연출과 기획을 맡기도 했다.
 

글갈골 발행인, 한국문인협회음성지부장, 한국예총음성군지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증 시인은 87년 지역의 문인들에게 '음성문학' 창간을 제안하고 이듬해인 88년 16명의 문인으로 구성된 음성문학회를 창립했다.
 

이어 1989년 5월 음성지역 문학의 씨앗이 된 음성문학 창간호가 발간됐다.
 

그는 어렵게만 생각하는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종이 한 장짜리 '쪽지문학'을 창간했고, 음성문학과 원남문학 등 지역별로 문학회를 구성해 문학집을 내는데 열정을 쏟기도 했다.
 

증 시인이 자작시 낭독을 시작하면 현충일 행사장은 늘 미망인들과 유족들의 흐느낌으로 늘 숙연해진다.
 

이들과 먼저 간 이의 마음을 담은 단어 하나하나 글 한 줄 한 줄이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시를 널리 알리고자 문화?체육행사 등에 출연해 자작시를 낭독해 오고 있다.

▲ 증재록 시인이 그동안 편집과 창간학 문학집들.

 

시에 한을 담다
 

증 시인은 은퇴 후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주일이면 어린이, 학생, 주부, 어르신 등 7살부터 80세까지 50~60여 명을 만난다.
 

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 강의 일정표가 빼곡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시의 재료는 생활 속에 널려 있다는 것이 증 시인의 지론이다.
 

코흘리개 어린이와 학생들이 시를 쓰면서 잠자던 순박한 아름다움을 깨우는 모습을 목격했고, 평범한 주부들이 시를 만나고 책을 내면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특히 60∼80대 노인으로 구성된 '시갈골 문학회'는 지난해 9월 시집 '웃음으로 여는 낯선 하루'를 냈다.
 

'시갈골'은 '시를 갈고 닦는 골짜기'라는 의미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충북 노인문화예술제' 시 부문 입선자 12명 가운데 '시갈골 문학회' 회원 8명이 대상, 우수상 등 각종 상을 차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음성지역 문학에 대한 역사를 정리해 새로운 음성지역에 문학을 세우고 싶어는 것이 마지막 꿈이다.
 

또한 증 시인은 문학 특히 시는 아름다운 감성을 갖게 하고 때론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로 누구나 시를 통해 자립하도록 도울 계획이다.

▲ 증재록 시인이 수강생들과 함께 김중기 금왕읍장에게 문학강좌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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