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구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팀장 인터뷰

▲ 신현구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팀장

[충청일보 정현아기자] "옛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천히 둘러보며 소중한 추억 만들어 가세요 "
 

신현구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팀장(59)이 대통령역사문화관 앞에서 청남대를 찾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지난 6일 만난 신 팀장은 "특별한 것 없는 시골촌놈을 무슨 인터뷰씩이나 하려고 그래요. 하하. 평범한 공무원인데…."라며 인터뷰 요청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신 팀장은 누구보다 특별한 공무원이다.
 

지난 1980년부터  2003년까지 수 많은 대통령의 곁에서 그림자 경호를 수행한 그는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등에서 23여년을 근무한 '경호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청남대 대통령역사문화관 청남대관에서 '소품으로 보는 대통령들의 일상'이란 전시회를 열고 있다.참 질긴 인연이다.
 

지난 23년간 대통령의 곁에서 임무를 맡았던 그가,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에 내려와 10여년을 근무하며 이곳에서 전시회까지 열게 됐으니 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과 그의 질긴 인연의 시작은 지난 1980년 12월 9일이었다.
 

꽤 오랜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하지만 그는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충남 부여에서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어요. 집안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학교는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형편이는데, 당시 공무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왕 공무원을 할꺼면 색다른 공무원을 해보자 해서 지원을 했고, 운이 좋아 필기·실기 시험을 통과해 28살의 나이로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죠."
 

체력 하나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다는 그는 청와대에서도 '악바리 촌놈'으로 통했다.
 

"지금은 살이 많이 빠져 왜소해 보일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깡'있은 놈으로 유명했어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등·하교길을 4km씩 걸어다녔고, 고등학교 12km를 자전거 타고 통학했어요. 말그대로 일상생활 속에서 체력이 단련된거죠. 하교 후 풀도 베고 짐도 나르며 부모님의 농사일도 돕다보니 체력이 안생길 수가 없죠. 저는 이것은 '풀뿌리체력'이라고 불러요."
 

청와대에서 근무한지 1년쯤 됐을까, 이 촌놈이 일약 주목받는 사건이 생겼다.
 

대통령경호실 직원들의 체력테스트날, 근성과 오기로 똘똘뭉친 그의 '풀뿌리 체력'으로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단단히 찍었던 것.
 

"전국에서 체력으로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 모인  대통령경호실이죠. 그런 사람들 앞에서 '앉았다일어났다'를 2400개를 했으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구요. 그 이후로도 경호실 체력 시합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죠. 경호원들 사이에서 시골 쪼그만놈이 깡하나는 대단하다고 인정받았어요." 
 

그는 청와대에서의 업무는 '명예를 먹고 사는 일'이라고 했다.
 

24시간 대통령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는 그의 일은 한 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일반 공무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관람객들에게 청남대를 안내하고, 민원을 해결한다.
 

2003년 7월 8일자로 이 곳에 발령받은 그는 대통령을 경호하던 시절에 비해 마음이 적적하지 않냐는 질문에 손사레부터 친다.
 

"하루에도 수천명이 방문하는 청남대에서의 업무는 끝이 없어요. 숨 돌릴 시간도 없이 일하고 있다니까요. 어느 직장이나 밥은 그냥 안주잖아요. 하하."
 

평소에도 우표를 모으는 등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그가 근무하며 모은 대통령 관련 물품만 600여점이다. 각종 뱃지, 기념품, 시계, 스카프 등 셀 수 없을만큼 많지만, 그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직접 받은 대통령 표창이다.
 

"세월이 흘러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어요. 내년 6월이면 청남대를 떠나게 되는데, 그 전에 제가 모은 소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이 대통령과 관련이 깊은 장소이고, 마침 전시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어 전시회를 준비했어요."
 

시계, 스카프, 넥타이 등 대통령들의 소품들을 골고루 만나 볼 수 있는 이 전시는 대통령역사문화관 한켠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어찌하다보니 제 직장생활이 대통령으로 시작해서 대통령으로 끝나게 되네요. 정년퇴직을 앞두고 아쉬움은 있죠.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30여년을 열심히 살았어요.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요?" 
 
 

▲ 신현구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팀장이 기탁한 대통령 관련 소품.

 

◇청남대 속 대통령의 모습
 

신 팀장이 대통령 경호원으로 청남대에 처음 발을 들인건 1983년 12월 27일이다.
 

당시 경호원들에게 청남대는 '반갑지 않는 휴가지'였다.
 

"어휴, 그 당시에는 청남대에 본관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경호원들은 개조된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해야 했어요.집 떠나서 컨테이너 박스에서 며칠 씩 생활한다고 상상해보세요. 힘들죠."
 

몸은 고달파도 국가에 대한 충성과 대통령을 모신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온 세월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남대를 즐겨 찾으셨어요. 길게는 2주 정도 머물기도 하셨으니 말이죠. 골프를 좋아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도착하자마자 골프장을 먼저 찾으셨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운동보다는 산책과 독서를 즐기셨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17일 하루 쉬다 가셨는데, 그날 골프를 치시고 본관 정원에서 삼겹살 파티도 하셨어요. 그 다음날 아침 일반 시민들에게 청남대를 개방하기로 결정하셨죠."
 

지난날을 회상하던 그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칼국수 사랑'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칼국수를 좋아하시는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죠. 청남대 그늘집에서 자주 칼국수를 드셨어요. 문제는 그늘집에는 주방이 없다는 점. 그 덕에 본관에서 칼국수를 끓여서 면이 퉁퉁 불기 전에 배달하는 중책(?)도 주어지게 됐어요. "
 
 

◇"경호원 생활…이해심 많은 아내 덕분"
 

청와대 들어가기 전 결혼을 한 그는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가족들과의 관계요? 아이고,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0시는 되야 들어오니 그런 아버지를 좋아할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평일·주말할 것 없이 바쁘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있어 줄 수 없었죠."
 

아이들에게 그는 눈 뜨기도 전에 출근하고, 잠들면 퇴근하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운 건 그의 아내.
 

"항상 제 뒷모습만 봐 온 아이들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엄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보니 그럴 수 밖에요. 그 몫을 늘 아내가 채워야했어요."
 

그래도 "당신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니까, 나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게"라며 든든히 곁을 지켜준 아내였다.
 

1983년 10월 버마의 독립운동가 아웅 산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를 수행하던 중 폭발사건이 발생,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 등이 사망하는  참변이 일어났다.
 

출근길에 "나 출장간다. 2~3일 있다 올꺼야" 한마디 툭 던지고  집을 나서는 남편인데, 이 사건 이후 아내의 근심은 깊어졌다.
 

"늘 제 걱정을 먼저 하는 사람이예요.무뚝뚝한 모습에 섭섭할 법도 하지만  늘 저를 자랑스러워 해줬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큰녀석은 결혼해서 떠났고, 작은녀석도 제일이 바쁘다보니 함께 할 기회가 없네요. 이제 퇴직을 하면 아내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설계해야죠."

 

▲ 신현구 충북도 청남대관리사업소 운영팀장(59)이 지난 23년간 모아온 대통령 관련 소품 600여점을 기탁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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