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시장 상인·주민 등 5명 구성
"매주 목요일 연습시간 '삶의 활력소'"
서로 언니·동생 돼… 따뜻한 情 '폴폴'

 
 

[충청일보 정현아기자] "두둥 딱 둥둥 둥두두둥 딱~"
 

지난 6일 오전 9시, 충북 청주시 가경동에 위치한 난타연습실.
 

아침부터 이곳에 모인 중년 여성들은 편한 옷차림과 달리 진지하다 못해 비장한 표정으로 모듬북 앞에 서 있다.
 

"하! 장단에 맞춰 한번 더"
 

큰 모듬북을 두드리는 한 여성의 구호에 맞춰 '둥둥' 연습실을 울리는 강렬한 북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굿거리, 휘모리장단 등 신명나는 장단을 듣고 있자니 들썩들썩 어깨춤이 절로 난다.
 

"청춘 홍안을~ 네 자랑 말어라~ 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누나~"
 

이어 연습실에 청춘가(靑春歌)가 흐르자 쉴새 없이 북을 두드리던 손길이 잦아들더니, 여성들의 일사 분란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모듬북을 힘껏 두드리던 김선임(67)씨는 목청을 가다듬고, 김혜선(55)씨는 꽹과리를, 심철순(60)씨는 장구를 집어든다.
 

장찬희(44)·주인영(43)씨는 다시 한번 북채를 고쳐 잡는다.
 

기본 장단에 충실하던 모습에서 퍼포먼스를 가미한 무대매너까지, 이들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신명나는 리듬과 장단으로 보는 이의 가슴까지 뛰게 하는 이들은 '두리두리 난타 동호회'(이하 두리두리) 회원들이다.
 

'두리두리'는 가경터미널 시장 상인들과 주민들이 함께 하는 어울림을 목표로 지난 2012년 결성된 동호회다.
 

지난 2010년부터 진행된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일명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시장 내에는 문화예술의 향기가 베어있었고, 자연스럽게 각종 동호회가 결성되면서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임씨와 초창기 멤버 장찬희씨 등은 이왕이면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난타'를 배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시작된 이들의 연주는 타지역 동아리와 교류 공연을 하고, 1년에 두 번 열리는 '가경통통' 무대에 설 정도로 성장했다.
 

"우리 시장에는 풍물·판소리·밴드 등 동아리가 많아요. 저도 자연스레 판소리를 배우고, 풍물도 접하게 됐죠. 우리 동아리 회원들은 난타 뿐 아니라 드럼연주, 노래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했답니다. 여러 분야에 경험이 많다보니 북이며 꽹과리며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장단을 연주할 수 있어요.(선임)"
 

'가경터미널 시장 난타동아리'로 더 유명한 이 동호회에게 '두리두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며칠 전 연습을 하다가 '우리도 그럴싸한 동호회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장단을 만들어낸다라는 의미로 '두리두리'는 어떠냐고 멤버들에게 물었더니, 멤버들이 만장일치로 오케이를 해 '두리두리'가 됐어요.(선임)"
 

두리두리는 매주 목요일 오전 9시 김준모타악연구소에 모여 함께 연습하며 실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40대부터 70대를 바라보는 중년여성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두리두리의 고정 멤버는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임씨, 멤버들의 간식을 책임지는 심철순씨,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입담을 자랑하는 김혜선씨, 총무를 맡고 있는 장찬희씨, 평소에는 수줍움 많은 막내에서 무대에만 오르면 돌변하는 '무대체질' 주인영씨 등 5명이다.
 

이들은 연습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쉬는 시간이 되면 동그랗게 둘러앉아 금새 '언니, 동생'이 돼 가족, 친구 등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주일에 한 번인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요. 사실 연습도 즐겁지만 쉬는시간이면 멤버들과 간식을 나눠먹고, 연습이 끝나면 모여 가볍게 차 한잔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재미도 쏠쏠해요.(철순)"
 

난타 동호회 활동은 무료했던 이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난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아이들이 '우리 엄마가 공연을 해?'라며 신기해하더라구요. 기회가 될 때마다 공연장에 찾아와 응원을 해주는 아이들 모습에 자부심도 생기고, 일상생활에서도 생기가 넘치는걸 느껴요.(찬희)"
 

가경터미널시장에서 보림혼수를 운영하는 선임씨에게도 동호회는 큰 활력소다.
 

"신명나는 장단에 몸을 맡겨 한두시간 북을 두들기다보면 한 주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훌훌 날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특히 스스로 좋아서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2시간 동안 땀을 튀기며 북을 두드리고, 장구와과 꽹과리를 쳐대는 그들에게 '힘들다'라는 모습보다 '신명나게 잘 놀았다'라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 지난달 18일 충북문화관에서 진행된 '2014 충북생활문화예술동호회 페스티벌'에 참가한 두리두리난타동호회 회원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쥐띠만 3명…세대차이 없어요"
 4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단원들이 모인만큼 나이로 인한 세대차이가 있을 법도 하지만 단원들은 여느 동호회보다 소통이 잘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끈끈한 팀워크에는 '쿨한 왕언니' 김선임씨의 역할이 컸다.
 단원들 간 호칭은 '언니'로 통일하고 단합을 우선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
 단원 중 가장 고령자인 김선임(67)씨와 김혜선(55)씨, 주인영(43)씨는 모두 같은 '쥐띠'다.
 이들은 띠동갑이 두 번 돌아가는 나이 차이는 있지만 세대차이는 못느낀다고 했다.
 "처음 두리두리 멤버가 됐을 때, 왕언니의 나이를 듣고 '혹시 대화가 안돼면 어쩌지'하고 걱정을 했는데, 언니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통하는 것도 많아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어요. 언니라고 부르라는 왕언니의 말에 친언니처럼 믿고 따르게 됐어요.(인영)"
 이들은 연습실에서는 물론 무대위에서도 친구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대접을 받으려 하는 건 별로예요. 동호회에서 똑같이 연습하고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해 주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르치고 지적하는 것은 지도하는 선생님의 몫이죠.(선임)"
 동호회 분위기 뿐 아니라 무대위에서 하나 되기위한 언니들의 남 모를(?) 노력도 있었다.
 무대위에서는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동살풀이 ,엇모리, 휘모리 장단 등 다양한 장단을 떠올 릴 수 있도록 달달 외워야 하는 상황.
 둘째언니 심철순씨는 "처음 난타를 배울 때 악보를 암기하는게 가장 큰 부담이었죠. 그래도 무대위에서 다른 멤버들에게 누가 되지않도록 노력하다보니 이제는 머릿속에 장단이 콕콕 박혀 있다"며 메모가 빼곡히 적힌 악보를 웃으며 꺼내보였다.
 
 

▲ 지난 9월 13일 열린 청주읍성큰잔치에 참여한 두리두리난타동호회 회원들이 장구를 치고 있다.

 ◇"내년 가장 큰 목표는 북 구입"
 두리두리동호회 회원들의 내년도 가장 큰 목표는 '북'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김준모타악연구소에서 연습실과 연습용 북을 제공하고 있지만, 두리두리 소유의 북은 없다.
 특히, 공연이 있을 경우 매번 연구소에서 북을 빌려가는 것을 미안해하는 멤버들이다.
 "김준모 선생님께서 연습실을 빌려주는 것만해도 감사한데, 북까지 빌려주니 항상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이죠. 4개가 한세트인 난타북 가격이 만만치 않아 한푼두푼 차곡차곡 모으고 있어요. 내년에는 꼭 북을 구입할 계획이예요.(선임)"
 사정이 이렇다보니 두리두리의 최종목표인 '재능기부'는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노인복지관이나 병원에 우리들의 공연을 무료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내년에 북을 구입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명나는 우리 가락을 들려주고 싶어요. (혜선)"
 현재 두리두리는 아마추어 문화예술동호회에 전문예술가를 파견하는 충북문화재단의 문화예술플랫폼사업일환으로 난타 지도교사를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두리두리를 지도하고 있는 강사 지원은 오는 20일이면 끝이 난다.
 "내년도 문화예술플랫폼사업에 우리 두리두리가 선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선정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수강료를 모아 저희들을 지도해주시는 강사님께 수고비를 드리며 계속해서 배울 계획이예요.(찬희)"
 하고싶은 일을 해서 몸도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는 두리두리 회원들의 우렁찬 북소리가 '둥둥'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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