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애견하면 불도그이었어요. 저희 숍에는 항상 불도그를 키웠죠. 그중 최근 키운 불도그가 월아(가명)라는 아이였어요. 도그쇼(show)에 나갈 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아이였죠. 한 단골 고객이 월아를 특히 예뻐했어요. 하루만이라도 데리고 나가서 산책도 하고 추억도 만들고 싶다고 했었죠. 신원도 확실 해서 동행을 허락했죠. 다음날 고객이 월아를 차에 태워 샵으로 오던 중 우연히 지인을 만나 월아를 차에 두고 대화를 이어갔아요. 한여름 고온의 차 안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하늘로 떠났죠. 그때가 3살이었어요. 자기 생을 다 채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거죠. 그래서 가슴에 더 남아요. 당분간은 강아지를 키울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다시 키울 거예요. 아마 그때도 불도그 일 겁니다"

"온라인고스톱을 가끔 즐겨요. 저는 도매업을 겸하기 때문에 매장에는 직원들 퇴근시간에 와서 홀로 저녁 9시까지 가게를 지키죠. 이때 온라인 고스톱이 시간 때우기 좋거든요.(웃음)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녁 9까지 매장을 지켜요. 매장 문 닫는 시간은. 고객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 자신의 매장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라애견샵 박재협 대표

"첫 시작은 상업적인 목적이 컸어요. 반려견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업적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죠. 반려동물에 대한 전문지식은 그다음이었죠. 당시 청주에 애견샵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울만한 곳이 없었어요. 전국에 있는 전문 애견샵을 찾아다니면서 전문 지식을 습득했죠."

"요즘 소규모 애견숍이나 동물병원이 많이 생겼어요. 우리나라에서 애견숍은 IMF를 지나 첫번째 호황을 맞았어요. 그 시절 우리나라 국민들이 많이 힘들었잖아요. 힘든 시기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기 시작했죠. 당시 강아지 분양가가 200~300만 원이었어요. 회사원 한 달 월급이 100여만 원 이었던걸 생각하면 거품이 심했던 거죠.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아서 소비자들도 가격을 비교해볼 자료도 없을뿐더러 이 업계가 정해진 공정가가 없기에 애견숍에 따라 분양가격이 천차만별이었죠."

▲ 자신이 키워던 강아지 월아의 납골함을 보여주며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나라애견샵 박재협 대표

"1990년에 청주 수곡동에서 처음 애견숍을 시작했어요. 그 후 청주대학교 근방에 있다가 지금의 자리인 사직동 체육관 앞으로 으레 온 지 15년 정도 됐죠. 당시 전문 애견숍도 별로 없을뿐더러 나라 애견이 청주에서 가장 큰 규모였어요. 아마 청주에서 전문 애견숍은 저희가 처음일 겁니다. 이후 매출이 점점 늘어났죠. 하지만 개업 초기 상업적인 면을 앞세우다 보니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됐어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을 나누는 것이기에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죠. 어느 순간부터 어려움이 왔어요. 당시 잘한 것도 있지만 못한 것도 많았아요. 현재는 많이 회복한 상황입니다.(웃음)"

"학생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강아지를 분양받았던 학생이 성인이 돼 키우던 강아지가 떠나고 다시 강아지를 분양받으러 오는 고객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우리 지역은 시 단위 도시 중에서 애견숍이나 동물병원 수가 월등히 높아요. 즉 인구수 대비 반려동물 관련 수요가 많다는 거죠. 아마도 초기 애견숍들이 홍보를 잘해서 그런 거 같아요. 저희 같은 경우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원아들을 대상으로 견학 교육을 제공해요. 30여 분 정도 다양한 종의 강아지들을 견학하면서 제가 해설을 해주는 식이죠" /충청일보 천정훈 기자

▲ 인터뷰중인 나라애견샵 박재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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