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일보 사설] 오늘부터 대한민국의 문화가 바뀐다. 그동안 익숙했던 관행으로부터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요구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대가성 있는 금품과 서비스 제공은 물론 아예 그런 의혹을 살 만한 관계 설정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저 밑으로는 반대급부를 염두에 두면서도 온갖 인연과 정, 사람 사는 방식이라는 걸로 포장한 채 별 거부감 없이 주고받던 관행의 고리를 끊도록 주문하고 있다.
이 법이 제안(2012년)·제정(2015년)되고 시행을 준비하는 동안 여러 상황 가정과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허용 범위인 음식물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이라는 이른바 '3·5·10 기준'을 놓고 너무 법적인 잣대로, 기계적으로 제약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그중 하나다. 여기에 여태껏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던 사회상규와의 부닥침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걱정, 대상의 적절성, 명확지 않은 내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시행은 시대적 요구다. 도입 역시 공직자가 금품을 받는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혐의를 벗거나 무죄를 받으면서 부정부패 방지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에 따른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우리 사회가 금품을 사이에 둔 어두운 거래, 사회적으로 용인된 범위를 넘어선 위험한 거래에 너무 관대했고, 익숙해 있었다. 이 익숙함은 잘잘못을 판단하는 사회통념마저 헷갈리게 했다. 그런 만큼 이 법의 시행은 악습을 깨고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진통이고, 통과의례다.
국민 대부분도 법 시행에 동의하고 있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지난 추석을 앞두고 가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2.4%가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뇌물 청탁 같은 비리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82.2%)는 게 우선 꼽혔다. 위반 사례를 목격했을 때 신고하겠느냐는 물음에는 76.3%가 하겠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앞서 5월 한국갤럽의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당시 시행령 입법예고에 대해 응답자의 66%가 '잘된 일'이라고 했다. 지역이나 성(性), 연령, 지지 정당 등 모든 특성에서 우세하게 나왔다.
물론 긍정적인 눈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아직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고, 소비 심리 위축 같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뿌리 깊은 잘못된 관행에 한계를 느껴서인지 과연 잘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직업·계층별로 다양한 반응에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으로 법적 잣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과정까지 겪었다.
시행 초기 여러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 경험이 없고, 판례도 없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기대와 우려 속에 '부정부패와의 단절'이라는 처음 걸어 보는 길을 걷는 걸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국민 의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