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일보 사설] 공직자가 대가성이 있건 없건 이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에 관한 금지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처음 맞은 주말과 휴일은 우리 사회의 변화 모습을 확연히 드러냈다. 예전에는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었던 고급 음식점은 개점휴업 상태였고, 접대문화의 대표 격이었던 골프장은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며 한산했다. 주말·휴일 축하 화환으로 발 디딜 틈 없었던 결혼식장은 행여 문제가 될까 몸 사리기에 그 수가 팍 줄었다. 반면 서민들이 즐겨 찾던 전통시장 내 먹거리 장터나 접대와는 거리가 먼 등산, 축제 현장은 고르지 않은 날씨에도 별 차이가 없었다. 김영란법은 이렇게 우리의 생활문화를 확 바꿔놓았다.
김영란법에 대한 이 같은 반응은 이 법에 대한 기대와 우려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자리 잡았던 잘못된 관행,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기면서도 쉽게 외면하지 못했던 접대와 생색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었던 은밀한 주고받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던 뒷거래, 잘못된 건 줄 알면서도 발을 빼지 못했던 청탁과 대가에서 탈피하자는 것에 대한 호응이다. 그것이 비록 자의가 아닌 법이라는 강제적 수단에 의한 것이지만 이제는 더 외면할 수 없다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공감대다.
물론 우려의 반응도 있다. 모든 국민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까딱 잘못하다간 걸릴 수 있다는 걱정, 재수 없이 시범 사례로 적발될 수 있다는 조심, 아직은 법 적용이 명확지 않은 만큼 바짝 엎드려 조용히 지켜보자는 몸 낮추기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행히 시행 초기 이런 기대와 우려는 대부분 법을 거부하는 게 아닌 지키려는 반응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몸 사리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연례행사로 열리던 대학교의 신입생 유치를 위한 설명회와 교사 초청 간담회에서의 기념품 제공이나 음식 대접이 혹시 문제가 되는 건 아닌지, 의료진에게 입원해 있는 가족을 잘 부탁한다고 건네는 말 한마디가 법에 저촉되는 건 아닌지, 공무원이 장학금을 받고 특수대학원에 다녀도 되는 건지 등 너무 위축된 행동과 과잉 해석에 대한 경계도 표출되고 있다. 법을 의식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청탁과 대가성 여부에 꿰맞추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서울에서는 문화예술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로당 노인들에게 교통 편의와 식사, 선물을 제공한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법 위반 혐의로 첫 신고 된데 이어 검찰에 고발됐다. 강남구청은 이에 대해 "사업추진 계획에 따라 집행됐고, 직무와 관련된 공식 행사 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은 위반이 아니다"고 밝혔다. 충북에서는 지역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시종 지사가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식사비 1만 원씩을 각자 부담했다. 자치단체장이 솔선수범해 법을 지키는 걸 보여주는 것 좋지만, 너무 경직된 감이 있다. 김영란법을 지키되, 마냥 꺼리지 말자.

